파도와 서퍼

나는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by 홍보경

너울거리는 바다 끝에 서퍼들이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그림자를 신고 오는 파도는 뭍에 가까워질수록 키가 쑥 자란다. 절정까지 날카롭게 치솟다가 곡선을 그리며 흰 포말로 부서져 내린다. 음영이 짙을수록 그는 크고 거세게 부서진다. 지구 어딘가로부터 오랜시간 품어 왔을 기억들을 울컥 쏟아낸다.


서퍼들에게 파도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그래서인지 파도의 몸 곳곳은 신체 부위의 명칭으로 불리운다. 가장 높게 솟아 오르는 곳은 어깨 (Shoulder), 그곳에서부터 부서지기 시작하는 곳은 입술 (Lip), 아직 부서지지 않은 경사면은 얼굴 (Face)이다. 얼굴을 가지며 일어난 파도는 어깨까지 솟아올라 가장 정점에 닿은 뒤 입술을 스치며 무너져 내린다. 서퍼들은 파도의 얼굴을 쓰다듬거나 무너진 뒤 생기는 터널을 통과하며 라이딩을 한다. 그들이 지나갔던 파도의 얼굴 면적만큼만 오직 하나의 파도를 알게 된다. 아슬아슬한 입맞춤 후에 파도는 폭발한다. 한 겹의 사랑은 그렇게 허물어져 내린다.


그 날은 파도가 강하고 높은 날이라고 했다. 바다는 햇볕을 밭아 에메랄드빛과 초록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다가 때론 짙은 남색과 검은색으로 그늘졌다가 눈이 부시게 흰 빛깔로 산란되었다. 저 멀리 라인업엔 서퍼들이 해변을 등지고 둥둥 떠 있었다. 서퍼들이 파도를 타는 모습은 마치 파도와 함께 춤을 추는 것 같다. 파도의 솟아오른 물결은 육지 동물의 척추를 닮았기도,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닮았기도 하다. 서퍼들은 매끈한 파도의 주름 위에 올라타 살아있는 물 입자들을 연주하듯 오르내리고 있었다. 피아노의 낮은 음계부터 높은 음계로 미끄러트리기도 하고, 화음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연주를 멈추었다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곡조를 내밀어 전율을 일으키듯이. 하나의 사랑은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목이 메었다.


해변에 서서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만조를 맞이하여 한껏 차오른 바다는 경이로운 초록빛의 얼굴로 울렁거리며 미끄러져온다. 뭍에 다다를수록 하얀 이를 사납게 드러낸다. 해변의 모래를 삼킬 기세로 돌진하던 파도는 주춤거리며 일제히 이빨이 뽑히듯 들쭉날쭉 무너져 내린다. 바다의 목소리가 시원스레 느껴지다가도 우레같은 기세로 힘껏 달려와 겨우 모래 몇 주먹 훔쳐 물러서는 파도를 보면 불현듯 애틋해지기도 한다.





서핑보드를 가지고 바다에 들어갔다. 발이 닿는 곳에서는 파도에 휘말려 몇 번이고 모래바닥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파도가 잠잠할 때를 엿보아 보드에 올라탄 뒤 열심히 양팔을 휘저었다. 높고 강한 파도가 세트로 연달아 다가왔다. 파도가 부서져 힘이 강하게 내리꽂히는 곳에서는 보드를 뒤집어 밑면으로 파도를 흘려보냈다. 부서지기 전의 파도에서는 타이밍을 맞춰 보드 앞 부분을 눌러 배 밑으로 흘려보냈다. 이도저도 되지 않을때엔 속절없이 파도의 목구멍에 삼켜져 몇번을 구른 뒤에야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라인업에 다다랐다. 다른 바다에서도 라인업까지 나와본 적은 있었지만 그 정도로 멀리, 깊은 곳까지 나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곳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서퍼들은 말 없이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감 아래에 묘한 평온함이 서려 있는 기이한 침묵이었다. 저 멀리 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점처럼 보였다. 왜인지 모르게 불쑥 외로움이 들었다.


서퍼들 중 한 명이 파도가 온다는 신호를 보내 주었다. 작은 언덕들 몇 개를 보내고 난 뒤였다. 패들을 하며 파도를 잡아보려 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그곳에서 깨지는 파도는 여태까지 내가 겪었던 파도보다 몇배나 되는 덩치로 나를 찍어눌렀다. 보드는 저 앞으로 튕겨져 나가고 나는 파도에 집어 삼켜져 몇 번이고 데굴데굴 구르며 물을 먹었다. 추스를 새도 없이 세트 파도가 연달아 정수리 위를 덮쳤다. 그 때 오른쪽 발목에 감겨있던 리쉬코드가 뚝 끊어졌다.


깊은 바다에서도 수영을 해서 빠져나올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나의 오산이었다. 리쉬가 끊어지고 보드를 찾을 수 없게 되니 태평양 한 가운데에 표류된 것처럼 어마어마한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뒤이어 두 세번의 큰 세트 파도가 나를 집어삼켰다. 파도에 휘말려 물 속에서 구르기를 수차례, 물 밖으로 나와서도 기도가 조여들듯 숨을 잘 쉴 수가 없었다. 난생 처음 살려달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몇 미터 떨어져 있는 서퍼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그에게 정신없이 헤엄쳐 가서 보드를 붙잡았지만 그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 때 다른 서퍼가 다가와 자신의 보드에 나를 매달리게 한 뒤 저 앞에 떠 있는 내 보드로 데려가 끊어진 리쉬를 발목에 다시 묶어주었다.


무사히 해변으로 나오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걱정스런 얼굴이 보였다. 친구는 멀리서 내 모습을 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고 했다. 미안함이 치솟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고야 말았다. 친구 곁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놀랐던 가슴이 진정되고 나니 내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제주 중문 해질녘의 서퍼




서핑구간 옆에는 해수욕장 구역이 마련되어 있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튜브를 타고 있는 아이가 "나 혼자 수영할래" 하고 아빠를 뿌리친다. 아빠가 아이에게 "안돼, 위험해. 어른들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너 혼자 수영을 하니"라며 꾸짖는다. 아이는 풀이 죽는다.


어린시절 여름 휴가철 때마다 엄마 아빠는 나와 동생을 바다로 데리고 오곤 했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뜨겁게 익은 모래 위에 파라솔을 펼치고 그 아래 돗자리를 깔았다. 그 위에 엄마가 손수 준비해 온 부침개와 과일, 그리고 우리가 졸라서 해수욕장 포장마차에서 산 양념치킨과 콜라 같은 것들을 늘어놓고 먹었다.


파도가 거친 날이면 엄마는 우리가 바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아빠는 엄마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수영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바다에 들어가곤 했다. 기억 속의 나는, 파도가 우르르 부서지는 모래사장 앞에서 아빠가 걱정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아빠는 수평선을 등진 채 파도를 어깨에 이고선 "훠우우- 훠우우-" 하며 파도와 함께 너울 춤을 추었다. 아빠가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러자 나는 파도가 무섭지 않아졌다.


그 무렵 바다에서 놀 때, 거친 파도에 몇바퀴 뒹굴며 모래사장에 내동댕이 쳐졌던 기억이 있다. 눈 앞에 온통 물과 흙모래만이 소용돌이쳤다. 어린 마음에 그런 큰 파도는 처음 겪어 보아 너무 놀랐지만 그럴 때마다 아빠의 어깨춤과 활짝 펼쳐진 미소 그리고 "훠우우- 훠우우-" 하던 목소리가 떠올라 나는 파도를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아이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의 온갖 거친 파도 앞에서 나를 지켜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의 걱정어린 시선과 사랑의 품 안에서, 세상이란 바다처럼 드넓고 광대하기에 위험하지만 그렇기에 신이 나고 멋진 곳이라는 걸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그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과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무기와 연장들을 받았다. 그 사실을 깨우치는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여태껏 그들이 물려준 선물을 헛되이 소모시켜 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 자신을 헛되이 소모시켜 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나에게 준 사랑이 의미없이 흩어지지 않으려면 삶을 잘 살아내야 한다. 그들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세상은 멋지고 신나는 곳이라고. 진짜 황홀한 모험은 바다의 시작과 끝 사이에 있다고. 그건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할 때 발견할 수 있다고. 바로 나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과 파도를 타고 활짝 웃는 아빠의 마음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를 바다로 이끌어 주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바다에서 죽을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을 처음으로 느껴봤기 때문이었을까. 리쉬가 끊어진 뒤 잠시동안은 바다로 다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모래사장에 앉아 서퍼들의 라이딩을 지켜보았다. 노을지는 바다의 서퍼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파도와 함께 한 곡의 춤을 마친 뒤 바다로 스러져 내리는 그들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하나의 사랑이 저물 때엔 많이 아플 것 같다. 서핑보드에 엎드린 서퍼들은 다시 수평선을 향해 헤엄쳐갔다. 그렇게 다음 사랑을 맞이하러 간다.


용기를 내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이전만큼 파도나 조류에 많이 휩쓸리지 않게 되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는 파도에 고개를 숙여 넘길 줄도 알게 되었다. 흘려보내야 할 파도와 어쩔 수 없이 잘 맞이해야 할 파도를 점점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파도에 잡아먹힌 뒤 추스르는 것도 조금씩 나아져갔다. 다른 날엔 적당한 덩치의 파도를 혼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파도의 경사면에 올라타기 위해 물에 닿는 면적을 조절하거나 방향을 조정할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파도를 타는 것이 좋다. 파도의 비늘을 미끄러져 내려갈때면 심장은 충만한 숨으로 가득찬다. 즐겁고 행복하다.


삶이 바다와 닮아 있다면 서핑을 하듯 앞으로 다가올 날들의 파도를 즐겁게 타고 싶다. 때론 놓치는 파도가 있어도, 때론 피할 수 없는 파도가 덮쳐 와도, 서핑보드에 의지하여 헤엄쳐 나가는 서퍼들처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와 함께 하는 서퍼들이 있다. 보이지 않아도 뭍에서 우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그 사실을 가슴에 새기며 바다로 나아가고 싶다. 그리하여 언젠가 내 곁의 소중한 사람이 바다로 떠나갈 때에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닿지 않는 저 멀리까지도 묵묵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타는 파도와 네가 타는 파도는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파도들은 하나의 바다 안에서 함께 흐르고 있다. 네가 탔던 파도, 네가 타고 있는 파도, 그리고 앞으로 네가 탈 파도의 흐름까지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너 역시 무수한 파도 안에서 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너와 나의 파도를 서로 통과해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그것이 너와 나의 이별을 의미하더라도 아픔과 슬픔 넘어 다시 아름다운 파도를 찾아 나설 수 있기를. 나는 앞으로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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