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학교로 찾아오는 남도국악한마당

by 자유

학교로 찾아오는 남도국악한마당이 11시에 체육관에서 열렸다. 인근 중학교에서도 학생들과 교직원, 학부모들도 관람하러 왔다. 국악진흥회 단체장의 인사를 시작으로 공연이 시작됐다. 무대 뒤에서는 행정사님과 담당자 한 분이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대기 중이었다.


공연 팸플릿이나 순서지가 보이지 않아 궁금했지만, 사회자가 공연이 끝날 때마다 다음 순서를 안내해 주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중학생들은 침묵을 일관했지만 1,2, 3학년 저학년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소리를 높여 흥을 냈다. 첫 공연에서 이 지역 국악진흥회 소속이신 분이 ‘늴리리야’ 창을 불렀고 중간중간 음이 이탈하는 상황이 나왔다. 심지어 마지막엔 가사를 잊어버렸는지 배경음악에 몸을 흔들었고 곡이 끝나자 머쓱해하며 가사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며 “선생님이...”다음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사회자가 “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말을 끊고 다음 공연자를 소개했다. 나는 그만 웃음이 나와 손으로 입을 가렸다. 과욕이 화를 부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분도 웃고 있었다.


다음으로 북춤, 가야금 병창, 허튼춤, 장구놀이 순으로 네 분의 공연자가 자신의 기량을 관중들 앞에 마음껏 펼쳐 보였다.


그중 인상 깊은 장면은 허튼춤(허튼타령에 맞추어 추는 춤)이었다. 정갈하게 쪽진 머리아래로 빨간 옷고름이 달린 남색저고리와 벼색 치마, 빨강 속치마와 어우러진 하얀 버선발로 나온 여자분이 고유음악에 맞춰 춤을 춘 것이다.


마치 학이 날개를 펼쳤다 오므렸다 하며 두 발을 겅중겅중 걷다 물가에 사뿐히 앉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었다. 춤이 이어지는 내내 나는 출퇴근할 때마다 보게 되는 동천에 사는 왜가리, 두루미가 떠올랐다. 가끔 하늘에 날고 있는 새가 낮은 비행을 할 때 운전하는 차 바로 위로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려 감탄하던 때가 떠올랐다.

여전히 중학생들은 조용히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머리카락을 윤슬처럼 반듯하게 빗어 올린 한 남학생은 공연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그는 다리를 끊임없이 떨며 의자를 따라 진동을 일으켰고, 그 움직임이 공연 내내 이어져 뒤에서 지켜보는 내내 눈에 거슬렸다.


더 불편했던 건 우리 학교 6학년 남학생 두 명이었다. 그 두 녀석은 서로 몸을 부딪히며 깔깔거렸고 심지어 앞에 앉은 우리 반 남학생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지며 한동안 장난을 했다. 맨 뒤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가서 그만두게 할까? 그러면 시선이 내게로 와서 공연에 방해만 될 텐데. 그렇다고 저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어?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려 볼까? 고민하는 사이에 공연은 어느덧 마무리되고 있었다.


“여러분, 너무 멋있죠? 이분들은 해외 공연도 많이 나가시고 그곳에서도 인기가 많으시답니다. 오늘 괜찮았습니까?”

사회자분의 목소리가 강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네!”

그러자, 또 저학년들이 힘을 다해 목청껏 외쳤다.

“네. 우리 국악, 남도 국악을 여러분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세요, 앞으로도 많이 즐겨주시고 사랑해 주세요.”

공연이 끝나자 체육관을 가득 메웠던 환호성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흥겨움은 금세 일상의 고요로 바뀌었고, 아이들은 물이 빠져나가듯 제각기 교실로 흩어졌다.


생각해 보니 대중가요와 서양음악에 익숙해진 나는 시골 학교로 발령받은 이후 이렇게 찾아오는 공연으로 인해 우리 국악과 남도 국악을 접할 기회를 많이 가진 것 같다.


4년 전만 해도 ‘공연이 있으니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요즘은 공연자들의 움직임 하나,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벼 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