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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카 May 06. 2021

아빠의 죽음

아빠는 내가 18살 때 돌아가셨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그냥 아빠의 지인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 아빠는 참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것과 상관없이 죽음은 온다는 것을 눈앞에서 깨달은 18세




나의 우울은 그보다 훨씬 전의 것이었지만 아빠의 죽음이 나에게 더해준 우울은 여름의 통증을 더 심하게 가져다주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7월의 기말고사 기간. 나는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그 날은 한문시험이 있어서 날을 새고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평소보다 늦는 부모님의 귀가. 그게 좀 이상하기는 했다. 병문안 가셔서 할 이야기가 많은가 생각했다. 근데 자꾸만 불안했던 것이 아마 아빠의 죽음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아빠를 보내면서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다. 그때는 교회에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나는 병상에 누워있는 아빠가 일어나길 기도하면서도 따져 물었다. '이렇게 착한 사람을 데려가는 건 아니지 않으냐.'라고.


나의 기도와 상관없이 아빠는 쓰러진지 사흘 만에 돌아가셨다. 나는 밤마다 울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울고 누가 있으면 의젓한 척을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그래도 좀 더 의젓하게 있는 것이 엄마 아빠에게 좋은 딸이 되는 것이라고.


결과적으로도 남의 시선에 나는 의젓한 사람이 되었지만 스스로의 슬픔은 내 안으로 좀 먹어 들어갔다. 슬퍼할 수 있을 때 실컷 슬퍼했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해서 안에서 곪은 것이다. 


아빠의 죽음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 것은 맞지만 그 전에도 성향이 그러했으니 탓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운 우울에 기대어 나를 더 자기 연민에 빠트린 사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생각한다. 슬플 때 슬퍼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지 않으면 평생을 멍든 가슴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뼈저리게 안다. 




그날 아빠가 나를 놀이동산에 데리고 놀러 다니고 영화관에 가는 꿈을 꿨다. 엄마는 그것이 아빠가 꿈에서라도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한 일을 해준 거라고 얘기하시곤 한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아빠 기일이 돌아오기 전부터 우울에 더 심하게 몰입하곤 했다. 그 우울을 떨치려고 달달한 커피를 마셨다. 그게 내가 커피를 마시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아빠의 기일에는 집에 가기 싫어서 버팅겼다. 밖으로 돌아다니며 나름의 반항을 했던 것이다. 그 시간에 엄마가 요리하는 걸 돕는 것이 더 나았을 법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한테 내 우울을 들킬까 봐 무서울 만큼 아팠다. 


지금은 십여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아빠의 기일에 아프곤 한다. 그것이 마의 6월과 겹쳐서 더 끙끙 앓는다. 여름에 취약한 내가 여름에 잃은 아빠의 그림자를 떠올린다. 이제는 목소리도 얼굴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 아빠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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