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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년간 1,000권의 책을 제대로 읽었다.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by 아메바 라이팅

3년 전. 2016년 11월부터 오늘까지 나는 1,000권의 책을 읽었다. 큰 책, 작은 책, 종이책, 전자책, 추리소설, 역사 사기, 과학기술, 맥주와 와인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무작정 읽었다. 가려내기 시작하면 막상 읽을 책이 없어서다. 사람이 신간의 책을 출판해 내는 속도가 빠를까, 나의 독서 속도가 빠를까, 테스트하고 싶었다.


하루 1권 꼴인데 실제 목표가 1주일에 7권을 읽는 것이었다. 밀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평균을 유지했고 3년 만에 목표를 이루었다. 당분간 신간만 읽어도 다른 사람보다 책에 담긴 정보와 감정에 있어 뒤처지지 않을 듯하다.


어릴 적 나는 주산학원에 다녔다. 다니던 국민학교에 홍보하려던 동네 주산학원 원장이 각 학년마다 불우학생을 1명씩 선발해 주산학원을 공짜로 다니게 했다. 문제집을 살 때마다 공짜 학생이라는 눈치를 대놓고 쏘았다. 그렇게 두세 달 다닌 뒤 그만 두렸는데 원장이 불렀다. 계속 공짜로 다니게 해 줄 테니 제발 학원을 다녀달라고 부탁했다. 난 석 달만에 당시 주산 2단을 땃었고, 원장은 평생 그런 학생을 처음 만났기 때문이었다.


난 국민학교 6학년에 주산학원을 그만뒀고 공인 8단으로 국내 최고 단수를 자랑했다. 원장은 내가 휩쓰는 주산암산 경진대회 수상을 홍보하며 학원생 수를 크게 늘렸다. 서로 좋은 결과로 헤어졌다.


그래서 난 지금도 만 단위는 머릿속에 주판을 상상해 암산할 수 있다. 예전에는 천만 단위까지도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낡고 헤어져 만 단위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모든 기억을 스틸 사진처럼 머리에 새기는 능력이 월등하다.


모든 이야기가 그림책처럼 기억된다. 그림책을 넘기고 구석구석 숨은 인물을 찾아내 세세한 기억까지 떠올린다. 복잡한 암기과목의 내용은 엉뚱한 이야기로 단어를 엮어서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긴다. 그래서 나는 속독으로도 글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기억한다.


아내가 읽던 책을 내가 건네받거나 내가 읽던 책을 아내에게 건네면 확연히 드러난다. 아내가 일주일 읽어야 하는 책을 나는 서너 시간에 독파한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TV 드라마를 봐 가면서. 그래서 3년간 천권은 내게 힘든 도전이 아니었다.



천권의 책이 머릿속에 담기는 동안, 나의 취미와 기호가 달라져갔다. 그림, 클래식, 건축에 깊게 빠졌고 재즈, 와인을 즐기기 시작했고, 고전문학과 역사를 탐닉했다. 동서고금의 철학자들 생각과 사회학에 담긴 오류를 찾는데 열심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다자이 오사무에게 미쳤고 톨스토이와 푸시킨을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현대의 어쭙잖은 이공학자들의 어설픈 자기 학문 적용을 비판하고, 역사 지식 소매상이 쓴 책들을 경멸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일본의 전국시대를 보면서, 사람 사는 이유와 자기 계발법을 배웠다. 인문 사서의 이야기에서 비겁한 신념과 비참한 정의를 보았고, 나라면 어찌할지 생각했다.


화내기 전에 내가 저지를 무의미한 정쟁을 떠올리게 되었고, 말하기 전에 말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 현상을 보면서 정확히 분석하고 이해할 줄 아는 식견도 나를 살찌워주었다.


그래도 읽다가 도저히 책장을 넘기고 싶지 않은 책은 늘 침대 옆 머리 맡에 두고 읽는다. 나중에 읽자고 빼는 순간 그 책은 영원히 읽지 못한다.


이렇게 3년 동안 1,000권의 책을 읽으면서 신선이 되고 철인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영화, 드라마, 동화, 실화가 빠뜨린 행간의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신선의 통찰, 철인의 이해, 사람의 진실을 함께 내려 보는 순간, 인생의 또다른 목표가 자연스럽게 샘솟았다.


요즘 칼 라거펠트에 꽂혀 있는데, 이 양반이 30만권을 소장하다 유산으로 남겼다고 한다. 계산기를 어떻게 두드려도 읽었다고 칭찬할 수 없다. 라거펠트는 그냥 도서수집광일 것이다. 그래서 최근 독서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남은 30년 인생 동안, 더 길다면 스스로 중지시킬 것이다, 책 10,000권을 재미있게 읽다 세상을 접는 것이다. 아마 지난 3년보다 더 흥미진진할 거라고 확신한다. 책을 읽는 것은 어떤 인간의 행위보다 항상 옳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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