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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Oct 25. 2019

연인이 '사랑해'가 아니라 '나 사랑해?'를 묻는 이유

강요와 확신의 중간 어디쯤

국내 최초의 패션 큐레이터인 김홍기 작가가 '옷장 속 인문학'이라는 강연에서 한 말이다.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두 번째가 뭔지 아세요?"
옷장을 들여다보면서 하는 말이에요
"난 왜 입을 옷이 없어!"



문화살롱에 참여한 사람들의 박장대소가 터진다. 너무나 공감하는 말이니까. 특히나 여자들에게 "왜 이리 입을 옷이 없지?"라는 말은 하루를 시작하고 준비하는 전례 의식과 같다. 김홍기 작가는 Ritual이라고 부르는 전례 의식은 사람만이 가지는 관례인데, ritual로 인해 사람이 동물과 차별된다고 말한다.


바이허 라운지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고개가 끄덕인다. 곰곰이 생각하면 모든 일상이 Ritual, 전례 의식, 의 반복이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하고, 차려 입고, 하루의 일과를 다지고, 퇴근해 다시 전례 의식을 취소하는 Ritual을 또다시 반복한다. 그리고 결혼, 죽음, 생일 모두가 전례 의식으로 기념하고 축하하고 그 속에 깊은 감동과 의미를 새긴다.


사람에게 Ritual, 전례 의식은 삶의 방식이구나, 라는데 깊이 공감했다.



그런데 문득 그럼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뱉어내는 첫 번째 자주 쓰는 말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순간 청중의 심리를 한 발 앞서 꿰뚫은 작가가, 질문이 생기기 전, 얼른 선수를 쳤다. 그럼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뭘까요? 아세요?, 많은 사람들이 입 속을 소리 죽여 웅성거린다. 익숙한 상황인 듯 작가가 웃으며 자신의 질문에 답한다.


"가장 많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Do you love me?, 라고 해요."




그럼 그렇지, 라는 감탄의 의성어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묵직한 망치 한대를 크게 맞은 느낌이었다. 왜 I love you, 가 아니라 'do you love me?'일까. 내게는 반전의 사실이었다. 나는 평생을 사는 동안 '사랑해, I love you'라는 말은 했지만, '나 사랑하니?, Do you love me?'라는 말은 거의 써 보지 않았다. 상대의 사랑을 확신할 때는 '굳이 아는데 뭘...'이라서 입 속에 삼켰고, 사랑이 미덥지 않을 땐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이 들릴까 한켠으로 보이지 않게 치워두었다. 그래서 나는 'Do you love me?'가 의외였고 쓸쓸했다.



몇 년 전 2NE1이 부른 당찬 아이돌의 'Do you love me?', Ellie Goulding의 차가운 'Love me like you do.', 루나의 상큼한 'do you love me?', My Ruin의 쇠소리나는 'Do you love me?', 영화 더티 댄싱의 몸을 일으키는  The Contours의 'Do you love me?'에 이르기까지, do you love me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계에서 사용된다. 그런데 I love you가 아닌 Do you love me라서 애처롭다.


배신하고 사라진 동료, 한때 목숨보다 사랑했던 옛 연인, 가족이라 여겼던 직장 동료, 그리고 조국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와 인간사에서 '사랑이 과거였던' 사례가 더 많다. 현재의 사랑은 하나지만 과거의 사랑은 쌓이고 쌓여 여럿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할 때마다 우리는 'I love you.'라고 진심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상처 받은 후 우리는 'Do you love me?'를 소리 죽여 말했다.


세상의 장사치들이 하는 이윤의 셈에서 '세상만사는 Give & Take'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은 '항상 Give & Taken'이다. 주고 또 주고 그러다 앗아가는 게 사랑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랑의 징표라 여기며 행복해한다. 보들레르가 평생 동안 악녀 잔 뒤발에게 이용당해 생명의 에너지마저 빼앗겼지만, 죽는 순간까지 보들레르는 잔 뒤발에 대한 이해를 사랑으로 예찬했다. 그를 보아도 사랑은 적자 투성이의 'Give & Taken'이다.


브들레르가 잔 뒤발에게 평생 묻고 싶었던 말, 'Do you love me?'와 그를 등쳐 먹기 바빴던 잔 뒤발이 평생 그를 농락했던 말 'I love you.',  한편은 쉽지 않은 말문이지만 절박했고, 다른 한편은 달콤하지만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I love you는 순순히 자신을 내어주겠다는 Give의 자애이고, Do you love me는 날 삼켜 달라는 Taken의 갈구이자 애원이다.


Do you love me가 세계인들이 가장 흔히 쓰는 말이라는 사실이, 그래서 나에게는 씁쓸하고 애처롭다. 아직도 세상은 절박하고 부족하구나,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은 갈증의 대상이지 여유의 대상이 아니구나, 아직도 사람들은 절규하며 애원하고 있구나.


한 때 아내와 연애 시절 크게 싸웠을 때 생각 없이 지껄였던, 너 나 사랑하니?, 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심하게 싸워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해 아내의 심장을 뜨끔하게 만들 요량이었지만, 차마 상처 받을 아내에 대한 사랑이 더 컸기 때문에 에둘러 나왔던 그 말. 구글의 AI 번역기가 당시의 내 말을 지금이라면 어떻게 통역해 줬을까? 아마도 이렇게 번역하지 않았을까 싶다.



날 사랑해 줘. 내가 널 사랑하는 만큼.
난 정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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