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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극 배우니? 하루에 네 번 가면 바꾸게.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by 아메바 라이팅

#가면 1.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요즘 새벽 6시 반은 암흑이다. 우리나라의 계절 변화란 달이 바뀔 때마다 확연하다. 다행히 지하 피트니스 센터의 시설이 워낙 좋아서 운동하는 동네 주민들 사이가 워낙 좋다. 매일 눈뜨면 만나고 동네 주민이라는 격식이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웃는 얼굴에 고음의 하이톤으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매일 새벽 같은 단어의 같은 어절로 같은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다. 침대에서 눈뜬 후 가장 먼저 보는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오만 인상을 찡그리는 아들에게 미소 한번 보이지 않으면서. 동네 주민들에겐 1년 365일 웃는다. 그리고 하이톤으로 인사말까지 보낸다.


하루 첫 번째의 가식이 깃든 페르소나가 가면을 처음으로 썼다.



#가면 2. 회사 출근길

지하철역 인근에서 김밥 노점 하는 할머니를 보면 지나치지 않는다. 김밥 한 줄 천 원에 사드리는 연민으로 선의식을 아침 예식으로 시작한다.


지하철 안에서 임산부나 노인분들, 몸이 힘든 노인분만 해당된다, 을 마주하면 좌석을 양보하거나, 앉을 수 있는 내 앞의 좌석이지만 그들이 올 때까지 비운 채 기다려 준다.


난 참 괜찮은 사람이야.




#가면 3. 점심시간 마주치는 부하 여직원들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부하직원들, 특히 부하 여직원들, 에게 자상한 미소와 호감을 내보인다.


점심 잘했어? 커피 한잔 사줄까?



우르르 떼거지를 몰고 카페에서 아이스크림, 커피, 차, 과자로 가벼운 식후 디저트를 즐긴다. 상사로서 어른으로서 여지없이 여유로운 베포를 보여준다.


난 참 아랫사람들을 사랑해.




#가면 4. 저녁 접대 손님

6시 넘어 친절히도 접대받으시는 분의 직장 가까운 장소에 미리 도착한다. 술자리를 즐길 좋은 목을 확인하고 맛있는 메뉴를 미리 골라둔다. 사람을 웃길 농담과 나를 깔아뭉갤 자학 개그도 구상한다. 그리고 2차, 3차를 어디까지 갈지도 미리 생각한다.


가족에겐 한 번도 다음 차를 내가 먼저 생각해 본 적도, 외식 시간을 웃겨줄 구상도, 가족 앞에 나를 내릴 엄두도 낸 적 없는데, 나와 아무 관계없는 접대받는 이 사람에겐 나의 모든 자존을 까발려 먹인다.


난 회사에 헌신하는 책임감 강한 사람이야.




#가면을 벗은 늦은 시각, 우리 집

해장국이 뜨끈하지 않다고 아내에게 고함을 질렀다.


하루 종일 일하고 술접대까지 하고 온 사람한테, 국도 제대로 못 끓여주나!



화가 나면 학창 시절까지만 사용했던 사투리가 단어 채로 튀어나온다. 가면은커녕 가식과 가장 없는 맨 얼굴이다. 배 터지게 국물까지 마시곤 수저 모두 그릇에 두고 자러 간다.


아들과 한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고 아내에게 살가운 안부도 묻지 않고, 침대에 올라 아무 채널이나 TV를 켜고 이내 잠든다.


가면 벗은 내 얼굴엔 아무것도 없다.
가장의 따뜻함. 가장의 배려. 전혀 볼 수없다.
오로지 책임감이라는 걱정과 짜증이 어울리는 맨 얼굴이 가족과 함께 한다.
유독 내 얼굴은 가족을 만날 때면, 항상 적당한 가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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