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에이코와 타츠야, 둘이서 영원히
[제국의 화양연화 시리즈]
새벽 세숫물을 올리던 하녀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이내 테스와 유녀들의 울음과 통곡소리가 용산옥을 깨웠다. 방과 복도도 모자라 하녀의 쪽방까지 찾아가 구멍이란 구멍을 모두 채우며 마구잡이로 사정을 해댔던 출정군들이 기상나팔소리보다 더 참흑한 비명소리에 놀라 뛰어올랐다.
유곽의 주인이라는 남자의 아랫도리가 훤히 환부를 드러냈고 성기는 매끈하게 잘려져 뿌리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피를 흘렸는지 원래 흰 것으로 보이는 두꺼운 겨울 요가 적흑색으로 변했다. 얼마나 오래전에 피를 흘렸는지 다다미를 적신 피는 응고되어 가장자리가 선지 끝자락과 같았다.
누군가의 또 다른 비명소리와 함께 구석에 펼쳐진 겨울 이불의 흰 바탕에 피로 쓴 글자가 모두의 시선이 사로잡았다.
`에이코와 타츠야, 둘이서 영원히`
가장 나이 많은 고급 장교로 보이는 빡빡이가 흰 겨울 이불에 다가가 피로 쓴 에이코의 글자를 읽어 주었다.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혼잣말로 죽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에이코와 타츠야, 둘이서 영원히.
아베 히로시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술에 취한 탓인지, 에이코의 이야기에 취한 탓인지, 내가 알던 나의 존재가 우습게 허망해진 탓인지, 궁금하다며 질문할 기력도 없었다. 노역꾼 주제에 감히 장교 관사에서 한 치 망설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유타카, 유타카, 타케노우치 유타카, 부드러운 친구의 음성에 달아난 내 영혼을 붙잡았다. 한겨울 내 친구가 내쉬는 살얼음 같은 공기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관리팀에게 걸리기 전에 나가는 게 좋겠어, 친절한 배려의 말이었다.
"고마워, 히로시, 오늘은 내 숙소에서 해결할게."
감사의 말과 함께 일어나려는 나에게 아베가 수수께끼 출제자처럼 웃으며 말했다. 에이코는 어찌 된 줄 아나, 물어볼 줄 알았는데, 라며 수수께끼를 던졌다. 잠에 덜 깬 척하며 별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눈치를 보내자 아베가 그 세를 참지 못해 답했다.
타츠야에게서 잘라 낸 성기를 음부에 끼운 채 용산역 광장에서 벗은 시체로 발견됐어
더 길게 말하려는 눈치였다. 나는, 숙소 점호에 걸리면 동료들에게 맞아 죽는다, 라고 시선을 돌리며 얼른 뛰어나갔다.
십이월 겨울바람은 칼날과 비교할 수도 없이 살을 에는 고통이 최악이었다. 살 에는 바깥공기는 밤새 데운 허파 속 공기를 빠르게 식혔고 내 몸을 살얼음처럼 꽁꽁 얼렸다. 차가운 육신으로 차갑게 번쩍이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베가 전한 정도의 강렬한 사건이라면 이미 신문의 호들갑은 천하를 흔들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노역꾼으로 잡혀 왔다 해도 아무도 모르는 야사처럼 내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 의아했다. 하긴 육군본부나 사단에서 가만 두지 않았을 게야, 라고 이내 의구심을 고쳐 묻었다.
고추 잘린 시체 주변에서 고추를 드러낸 장교들이 만든 그날 새벽의 광경이 과히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 내지 출신들로 구성된 출정군 장교들의 연회가 유곽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인쇄된 활자로 남겨 놓을 배짱도 없었을 것이다. 명예를 중시하며 수치심에 목숨을 버리도록 수백 년 동안 강요받은 자들에게, 추악한 실재와 현실은 감당할 수 없는 불치병과 같았다. 당연히 회자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관사 변소를 청소하다 똥으로 지져진 호외의 큰 활자가 눈에 들었다.
난징 함락, 폭도 척결, 이라고 큰 중국 글자가 적혔다.
황군에게 대항한 지나의 폭도 수천 명이 처형되었지만 황군의 피해는 사망 12명이 전부라는 기사였고, 큰 글자 아래로 참수당하는 지나인의 사진이 선명히 인쇄되어 있었다. 오른편 하단에는 황 씨 성을 가진 선생 사진과 함께 음악 보국 대연주회의 수익금으로 트럭 세 대를 황군에 헌납했다는 신민 찬양 기사도 있었다. 내지인에게도 존경받는 후쿠자와 교수가 총독부에서 했다는 강연 제목이 맨 아래로 찢어져 있었고 나는 어렴풋이 글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이제는 태평양으로, 대동아 만세`
똥물에 얼룩진 사진 두 장을 마지막으로 깊게 들여다보고 자지러질 뻔했다. 오른쪽 홍 선생의 눈에서 타츠야의 쓸쓸함이, 지나인을 참수하는 군모 쓴 일본군의 모습에서 틀어 올린 유녀의 머리를 이고 있던 에이코의 광기가 마지막 희미한 숨을 내쉬며 사라져 갔다.
순식간에 달려와 욕지거리를 늘어놓는 일본인 작업반장의 호통에 어쩔 수없이 호외를 썩은 똥물과 함께 지고 온 똥통 속으로 내던졌다. 몇 달이 지나 따스한 기운이 느껴질 봄이 되면 용산 어디쯤의 밭 거름으로 되돌아가 이름 모를 생명의 씨앗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