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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Oct 12. 2019

4. 장희빈과 인현왕후, 최후의 승자는?

[20가지 기묘한 고급 상식 열전]

어린 시절 할머니와 늘 시청하던 오래된 드라마가 있었다. mbc의 조선왕조 오백 년이다. 조선왕조의 세대별 왕위를 잇는 궁중 사람들의 다툼과 관계를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해 당시 제작됐다.

해방 이후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선시대를 두른 최고의 소재는 연산군, 장희빈과 인현왕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태조 이성계, 고종과 대한제국 순이 아닌가 싶다. 자극적이고 남녀의 로맨스와 시기 질투가 들어간 사연이 국운이 걸린 비참한 역사보다 인기 높았던 것 같다.

장희빈과 인현왕후는 숙종의 여자다. 숙종이라는 임금은 조선왕조에서 큰 입지를 가진 왕이다.

19대 임금 숙종은,
장자 적통으로 무려 46년간 재위한 조선시대 몇 되지 않는 정통성 강한 왕이다.
그래서 숙종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 신하도 없었고 강력한 왕권을 휘두를 수 있었다.

게다가 숙종은 성격이 칼 같으면서 싫증을 잘 내는 스타일이어서 신하들이 숙종의 눈에 들려고 발버둥 치게 만드는 '나쁜 남자'였다.

숙종이라면 떠오르는 정치체계가 환국이다.

환국이란, 정치적 국면전환을 자주 사용해 정치세력의 물갈이를 통해 정국을 휘어잡았다.
그 가운데 이용된 두 여인이 장희빈과 인현왕후이다.

숙종은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를 차례로 정실부인으로 뒀지만 아무도 왕자가 없었다. 눈에 띄는 게 인현왕후가 첫 부인이 아니라 재가부인이라는게다.

13세에 왕위에 오른 숙종 주변에는 남인이 정국을 장악했는데 허적의 유악사건과 삼복의 변으로 인해 남인의 주요 인물인 허적과 윤휴가 죽임을 당하고, 송시열 등의 서인에게 병권을 비롯한 정국을 넘겨줬다. 이때를 1680년 숙종이 19세일 때 단행한 경신환국이다.

경신환국의 주요점은 인현왕후가 서인사람으로서 계비로 왕후에 책봉된 것이다. 앞서의 인경왕후가 죽자 어린 인현왕후를 책봉한다.

그런데 나이가 더 많았던 장옥정이 인현왕후보다 6개월 먼저 궁궐에 들어와 숙종에게 성은을 입었다. 여성으로서 18살의 어린 남자를 성적으로 장악한 것이다. 그러니 어리고 성적으로 어린 인현왕후에게 관심이 쏠릴 리가 없었다.

결국 경신환국 8년 후 27세의 숙종은 장옥정을 통해 아들, 훗날 경종,을 얻었다. 너무나 기뻐 숙종은 아들을 원자로 장옥정을 희빈으로 책봉했다. 그러자 남인 장옥정에 대한 경계와 젊은 왕과 왕후가 후사를 충분히 도모할 수 있으니 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삼아선 안된다고 서인들이 반발했다.

강력한 왕권과 함께 사나운 성격의 소유자였던 숙종은 이내 서인들을 숙청했다. 송시열을 유배 중에 사사시키며 정국을 남인에게 넘겨주었다.

1689년 28살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서인 시키고 남인이 후원하던 장희빈을 왕후로 책봉한다. 결국 왕실 내부의 후궁과 서자에 대한 냄비같이 달궈진 사랑으로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서인을 숙청시켰다.

이후 정국을 주도한 남인이 누린 영화는 5년도 가지 못했다. 허적이나 윤휴같은 중심인물들이 이미 경신환국 때 숙청되어 구심점도 없고 무능했다.

또한 기사환국 4년 뒤인 1693년 무수리인 숙원 최 씨를 책봉하며 숙종이 최 씨에게 흠뻑 빠졌다. 이때 숙종도 32살로 삼십 대 후반에 접어든 장옥정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어간 것이다.

다음 해 장옥정 오빠인 장의재가 최 씨를 독살하려 한다고 김인과 박귀근이 고변하자 불같은 성격의 숙종이 또다시 갑술환국을 일으킨다.

송시열 등 서인을 사면하고 정국에 내세우면서 폐비 윤 씨를 환궁시키고 장옥정은 다시 희빈으로 강등된다. 막말로 궁중 법도가 막장극으로 치닫았다. 그리고 그해 숙빈 최 씨는 왕자, 훗날 영조,를 낳는다.

갑술환국이 일어난 1694년으로부터 7년 후. 1701년에 인현왕후가 죽으면서 희빈 장 씨 일파의 악행이 밝혀지면서 희빈 장 씨와 오빠 장희재는 죽임을 당한다.

인현왕후는 온갖 고초 속에 변덕 끓는 남편의 바람기를 참으며 후세 없이 죽었고, 장옥정은 가족이 사사당하며 세자였던 아들 경종이 불과 재위를 2년밖에 못한 브리지 왕에 불과했으니.

영조, 정조라는 새로운 왕위 계열을 오랫동안 만든 숙빈 최 씨가 장희빈과 인현왕후로 대리된 남인과 서인의 싸움에 유일한 승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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