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이 아닌 풀다발의 삶
그림책 레터 <연남천 풀다발>
< 연남천 풀다발 > 글 그림 전소영
“모든 것은 가을로부터 시작되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실어 나른다. ”
청명한 바람과 함께 초록이 가득한 계절,
봄에 뿌린 씨앗이 열매가 되어가는 계절,
찬란한 봄 햇살 속 맞닥뜨리는
어떤 풍경에 황홀해지는 계절.
제가 참, 많이 좋아하는 찰나와 같은 ‘봄’입니다.
그림책 첫 문장에
심장이 내려앉는 첫 문장!
모든 것은 봄이 아닌 가을로부터 시작되었다니~
마음을 잡아채는 문구입니다.
아직 올해의 가을은 다가오진 않았지만,
어쩌면 가을이 너무 금세 다가올까 두렵지만,
오늘은 이 책으로 글을 써내려 갑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하고
놓치고 살았던 들풀의 존재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들꽃의 이야기를 잔잔히 담고 있어요.
들풀의 삶이 꼭 나의 삶, 우리의 삶과 같아서
가슴이 뭉클한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꽃이 피고 지는 일에도,
작은 열매의 생김새에도 이유가 있다.
당장은 시리고 혹독하지만
지나고 보면 소중한 겨울처럼.”
살면서 ‘대체 그때 그 일이 왜 일어났어야 했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더러 있어요.
인과응보가 아닌
인연과보 (因緣果報)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인연 因緣이란..
어떤 결과를 낳는 원인과 조건의 의미로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과
그것을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을 말한다고 해요.
과보果報 란..
인연의 결과로 나타나는 보답 또는 결과를 의미하고요.
즉,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말이지요.
가끔은 벌어지는 일들에
과거를 되짚어 확장된 물음을 쫓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
“ 물에 닿으면 물처럼,
바람에 닿으면 바람처럼. ”
어느덧,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요.
오는 더위를 막을 수도 없고,
가는 추위를 미룰 수도 없는 게 우리의 생.
그러니 비가 오면 맞아야 하고,
때로는 세차게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려 보는 게 세상 이치겠죠.
하지만
그것을 거스르거나 바꾸려 하는 건 사람뿐.
삶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 마음뿐인데.
아니, 내 마음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가 많은데...
그러니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그래서 맑은 날에는 맑은 날을 겪고,
흐린 날에는 흐린 날을 잘 겪으며
잘 살아가야겠다 다짐해 봅니다.
“ 때로는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작년 여름,
어떤 스님과 우연한 기회로 1:1 차담을 나누었어요.
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잔잔한 풍경 소리와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창밖의 풍경에 푹 빠져
이곳이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던 그런 곳이었답니다.
스님은 조용조용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눈을 뜨면 보이는 것들은 곧 사라질 꿈이고,
눈을 감고 조용히 머무는 그 시간이 진짜랍니다.
그러니 곧 사라지고,
지나갈 것들에 매이며 살지 마세요.”
때로는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들..
삶에서 ‘진짜’는 무엇인지 그림책을 보며
스님의 말씀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어느덧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언제나 똑같은 계절은 없다. ”
반복되는 일에도
매번 최선을 다한다.”
계절은 그렇게 차곡차곡,
계절은 그렇게 뚜벅뚜벅,
그리고 저의 오늘도 차곡차곡.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돌아오며 반복됩니다.
그럼에도 똑같은 계절은 없고,
반복되는 날들에 계절은 최선을 다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반복되는 날들을 살아가며
삶의 무늬가 결정이 되는 것.
때로는 사는 게 돌고 도는 계절과도 같아서
다시 제자리, 제자리인 듯도 해요.
삶도 같은 곳만 빙글빙글 도는 것 같지만
다시 한번 최선을 다 해보리라~
나의 선택에 후회치 않도록
나의 삶은 내가 책임지고 가리라~ 다짐합니다.
모두가 질 때 피는 꽃이 있고,
모두에게 저마다의 계절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피는 나팔꽃도 있고,
노을이 하늘을 물들일 때 피는 분꽃도 있어요.
마흔에서 쉰을 향해 가는 터널 어디쯤 서 있는 저는
느지막이 그윽한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면 소중한 겨울이었던 것처럼
지금은 시리고 혹독 하지만
저의 겨울이 곧 봄을 잉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꽃을 바라볼 때
작가는 풀을 바라보고 그림책을 만든 것처럼,
모두가 화려함에 환호할 때
저는 어둠을 밝히는
다정한 불빛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커다란 꿈도 꿔봅니다.
괜찮아진 줄 알았던 마음에
어떤 계기로 마음이 파도처럼 휘몰아칠 때가 있어요.
그 모든 것이 나의 생의 일부라고,
그렇게 늘 돌아오는 파도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결국 제 자신은 바다였다는 것을 깨닫고
바다로 제 자신을 돌려보내며,
시리고 혹독했던 겨울을 떠나보내며,
곧 다가올 오늘의 여름을 즐겨보렵니다 :)
" 계절마다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사는 일이 좋다.
기쁘게 몰두하는 일을 어쩌면
‘마음을 쏟다'라고 표현하게 된 것일까.
여기까지 무사히 잘 담아 온 마음을
한 군데다 와르르 쏟아붓는 시간 같다.
그렇다면 내게 초여름은
‘바깥'에 마음을 쏟고 지내는 계절.
좋아하는 바깥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즐기고
그게 곧 잘 사는 일이라고 믿으며 지낸다. "
김신지 <제철행복>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