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운전'은 통영에 오기 전까지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강원도에서는 2년 내내 방에 틀어박혀 공부를 하고, 필요한 물품은 집에 다 구비가 되어 있었으니 운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 가끔 멀리 나간다고 하면 서울이나 대학 친구들이 많이 사는 부천 정도인데, 그마저도 평창 올림픽 때 뚫린 ktx 덕분에 매일 같이 편안하게 책도 보고, 적당히 음악도 들으며 다녔으니, 강원도임에도 불구하고 교통의 불편함이 없었다. 강원도에서 불편함이 없었으니 서울에서는 더더욱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걸어 다니며 골목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으니 차라리 차는 없는 것이 편했다.
예상치 못하게 내 인생에 차가 필요한 날이, 아무 준비도 없이 와버렸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예상을 했어야 했다. '통영'시'가 평창'군'보다 교통이 낫긴 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통영지청의 위치가 다른 관공서에 비해 유별나게 변두리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이런 방심을 만들었고, 결과는 혹독했다. 회식이 한번 있으면 일단 9시 반쯤에 끊기는 버스는 절대 탈 수 없었고, 이마트나 롯데마트로 나가려면 20~30분을 기다리거나, 거의 국토대장정급 도보를 감수해야 했기에, 어느새 내 O카오 택시 내역은 산처럼 쌓여 갔다. '이러느니 차라리 차를 사는 게 낫지....'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2달도 걸리지 않았다.
이럴 때 차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었다면, 아마 고민 없이 본인이 생각한 차를 바로 고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뭐부터 고민 해야 하는지부터 고민 중....
이런 상태였다. 딱 저렇게 턱을 괴고 모니터를 몇 주 동안 노려보면서 이것저것 메모를 했다. 처음으로 차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순간이었다. 그 수많은 나름의 '공부' 끝에, 차를 사기 전에는 아래 크게 4가지 정도 기준을 정하고 차를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나 같이 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아래 4가지만 잘 생각해보고 차를 산다면 적어도 나중에 후회는 안 하지 않을까 싶다.)
1. 내 생활패턴은 어떻지? (=나는 차를 출퇴근으로 사용할까, 아니면 잦은 여행으로 장거리 주행을 많이 할까?)
3. 자동차세랑 보험료는? (=별별 할인 혜택이 다 있다. 블랙박스 할인, 운전 경력에 따른 할인, 자녀 할인 등)
4. 신차와 중고차, 뭘로 사야 하지? (=보통 원가 대비, 약 20~30퍼센트 중고차가 싸긴 한데, 구매 전에 체크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이걸로 글을 한편 써도 될 수준. 기본적인 킬로수, 사고유무, 용도 변경 이력, 장기재고 여부 등등...)
1~4를 고민하고 고민하며 수백 번의 클릭질로 결국 돌고 돌아 세상 무난한 '중고 모닝'을 사겠다고 집으로 전화를 하려는 순간, '아버지'라고 발신자 명을 반짝반짝 빛내며 핸드폰이 울렸다. "좀 알아봤는데... 이모 차 알지? 그 모닝 지금 팔려고 한다는데 그냥 이거를 우리가 사는 게 낫지 않겠나... 싶다?"
이 친구의 이름은 훗날 현 차주인 동생이 '테세우스'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릴만큼 고친 부분이 많다. 세명의 초보운전을 태우다보니...
세상 그렇게 허무한 순간이 없었다. 아버지 좀 일찍 전화 주시지.... 아들내미가 몇 주 동안 고민하고 낸 답을 너무나 간단하게 내버리셨다. 이게 나이가 갖는 지혜의 힘인가? 한바탕 소동 끝에 그렇게 치열했던 고민이 무색하게도, 그 뒤의 일처리는 간단했다. 이모와 면사무소에 가서 소유권 이전 신청을 하고, 이모 통장으로 나름 싼 값으로 책정한 모닝 값을 보내고... 이렇게 어쩌다 '첫 차'가 생겨버렸다. 이 차는 그 후 1년간 통영-거제를 잇는 남해 바다 해풍을 맞으며 나의 여행 친구가 됐고, 현재는 강원도 산바람을 맞으며 내 동생의 출근길 친구로 활동 중이다.
*통영에선 사실 중고차 시장이 작기 때문에, 가급적 부산이나 적어도 창원 쪽에서 차를 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니면, 통영에 오기 전에 부평이나 중고차 선택 폭이 큰 곳에서 사는 것도 좋다. 여기서 새차를 산다는 선택지도 있다. 그러나 첫 차는 중고를 사라던, 그러면서 본인은 새 차로 첫차를 뽑았던 어떤 친구는 '차 바닥에 돌 하나 튈 때 내 가슴도 돌에 맞은 기분'이라고 하더라. 내가 타는 저 중고차도 돌이 튀면 가슴이 벌렁벌렁했으니 첫 차가 새 차였으면 마음고생 꽤나 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