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머무르는 순간

흘러가는 작은 감정들에 대하여

by 하이민

예전부터 한 번쯤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다. 문제는 나 자신이 에세이라는 장르에서 어떤 글을 다뤄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유명 작가들의 에세이를 보며 이런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막상 글을 쓰려 펜을 잡으면 막막하기만 했다. 에세이의 정의를 검색해보니 일기, 감상문 등을 포괄하는 산문 형태라 했다. 이러한 포함 관계 때문인지 유난히 에세이에서 단순한 일기와 구분되는 뚜렷한 기준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내용도 문제였다. 가족이나 직장생활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는 스스로가 부담스러워 손이 가지 않았다. 지극히 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그 둘을 빼면 남는 게 없었다. 마땅한 소재가 없으니 더더욱 에세이를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지금껏 내가 드문드문 써온 조각글이 떠올랐다.

때때로 창밖을 보거나 길가를 걸어가다 보면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공기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계절이 바뀐 내음일 수도, 소란한 낮과는 다른 고요한 밤하늘의 모양일 수도 있다. 똑같은 하루하루가 지겹지만은 않은 건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껏 그런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면 감성 충만한 글을 간단하게 끄적대곤 했다. 이러한 글이 모일수록 단순한 조각글이라 여기자니 아쉬웠고, 그렇다고 시라고 부르기엔 의식의 흐름에 지나지 않아 부족한 감이 있었다. 이들을 서너 개씩 묶어보기도 했으나 애매한 정체성은 그대로였다. 계속 이 조각글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걸로 좀 더 긴 글을 함께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과연 그러한 생각의 뭉텅이를 나열하는 게 에세이라는 글의 기준에 부합할지는 의문이지만, 생각의 더미가 뭉치다 보면 적어도 에세이 비슷한 무언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솔직히 나는 꾸준히 글을 쓰는 편이 아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글감이라는 게 자주 떠오르진 않는다. 규칙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이 글만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가 없다. 예전에 글을 쓰는 근육을 길러보려 매일 10분씩 꾸준히 글을 적어보자 결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 날은 어린아이가 그린 낙서만도 못한 일과의 나열이 남을 뿐이었다. 그런 글을 쓰느니 차라리 산책길을 걸어가며 나무와 가로등, 참새 무리를 보거나 하늘을 구경하며 공상에 빠지는 편이 나았다. 글을 쓸 때 나라는 인간이 그렇다는 걸 인정하니 그냥 일상에서 드문드문 느끼는 감상이나 감정을 찬찬히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조각글 하나가 한글 파일 한 페이지 분량에서 1/4~1/3 정도는 차지할 테니 어떤 형태의 글이든 한쪽 정도는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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