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챙길 나이

복세편살

by 하이민

자격증

납작하게 눌린 플라스틱 조각 하나
지갑 속으로 접혀 들어가는 찰나의 시간만을 바라 반질반질하게 각이 잡혔다
한번 보이고 이내 사라질 그 조각 하나를 얻으려다
저도 모르게 네모난 모서리가 콱 박혀 들어간 모난 몸뚱이를 부여잡았다
피부를 갉아먹고 근육을 파고들어가
저 깊은 속까지 울려퍼지는 굉음에 시야가 부옇게 부풀어 올랐다
욕심껏 집어 올린 조각에 맞춰 몸을 우그러뜨리다 후회하고야 마는 미련함만 남았다




이게 얼마만의 브런치인지 모르겠다. 마지막 글을 올린 지 20여 일이 지났다. 그간 나는 별것 아닌 것에 도전했고, 생각보다도 큰 스트레스를 받아 시름시름 앓다가 최근에야 겨우 살아났다. 그 시간 동안 새삼 깨달은 것은 뭘 하든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자투리 시간을 할애하려면 무엇보다도 하고픈 것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번 달 내내 자격증 공부를 했다. 회사에서 자격증 수당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보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회사와 관련된 자격증이었지만, 솔직히 난이도가 높다고 할 수 없는 시험이라 그냥 교양서적 한 권 읽는다는 느낌으로 한 번 훑어보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배송된 책의 두께가 심상치 않았다. 그건 교재가 아니라 800장의 종이를 단단히 뭉쳐서 만든 가공할만한 무기였다. 갑자기 나타난 벽돌만 한 덩어리의 등장에 흔들리던 동공을 겨우 붙잡고 내용을 살펴보자 이 자격증을 꼭 따야만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사규에 명시된 다른 자격증은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자그마한 월급에 자격증 수당이나마 더하고 싶다면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약 3주간 고난과 역경의 문이 열렸다. 그 고통의 문을 열어젖힌 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문제였지만.

집에서는 도저히 책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동네 스터디카페를 끊었다. 출근 전과 퇴근 후, 휴일에 부리나케 스터디카페로 달려가 피로 그 이상의 수마와 싸우며 책을 펼쳤다. 이 시험을 두 번 볼 자신이 없었기에 형광펜으로 휘황찬란하게 색칠 공부를 해가며 정말 미친 듯이 달렸다. 그렇게 무리를 하다 결국 시험일 며칠 전에 탈이 나버렸다. 지병인 목과 허리 디스크가 도지면서 난리가 났다. 두통약으로도 가라앉지 않는 두통에 밤새 시달리며 한 숨도 못 자고, 나중엔 왼쪽 눈이 부어올라 식겁하며 안과로 뛰어가기도 했다. 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다 싶어 공부에 손을 놓아버렸다.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며 집에서는 무조건 침대에 누워 쉬거나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험 바로 전일과 당일에만 딱 한 시간 정도 기출문제만 봤는데 하루종일 저려오는 다리와 허리를 부여잡아야 했지만 다행히 자격증은 딸 수 있었다. 이렇게 유난 맞을 정도로 아파가며 볼 시험이 아니어서 민망하기까지 했으나 한번 상태가 엉망이 된 몸뚱이는 한참을 쉬어줘야만 했다. 아직도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쓸 정도는 되니 다행이다.

생각해 보면, 공부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꾸역꾸역 머릿속에 집어넣다가 결국 펑 터진 게 아닌가 싶다. 여태껏 나름 다양한 자격증 시험을 봐오며 합격했던 경험자로서 이번 일은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다. 퇴근 후에 회사와 관련된 내용을 보는 게 내 생각보다도 훨씬 싫었나보다.


몇 년 전만 해도 하기 싫은 일이라 해도 일단 눈앞에 있으면 ‘그냥 해야지, 뭐.’하며 버텨내곤 했는데 이제는 그게 안 되는 것 같다. 하고픈 일이 아니면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몸이 나가떨어진다. 간간히 아팠던 디스크가 이번 일로 크게 터지고 나니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크게 와닿는다. 언제나 하고픈 일만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싫은 일을 거를 수 있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내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것도, 살아가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균형점을 맞출 수 있는 것도 나 자신뿐이다. 말 그대로 복잡한 세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편하게 살아가는 령이 필요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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