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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아름다운 것들

마지막 피난처

by 커피중독자의하루

잠시 병에 걸리기 전의 일상을 떠올려 본다.


커피 없이는 하루의 시작이 어렵다. 세 잔, 네 잔을 마셔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야근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아름다운 것들 속으로 도망간다.

어느 날은 파란 하늘에,

어느 날은 탕비실에 새로 도착한 일러스트가 예쁜 과자봉지에,

어느 날은 점심때 먹은 한라봉라테에.

작지만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보물 같은 나의 도피처들이다.


탕비실에 과자가 도착해 있다. 그중에 찰떡파이가 눈길을 끈다. 하얀색 바탕에 분홍색으로 그려진 일러스트가 예쁘다. 겉의 곽을 보니 홍매화를 표현한 것인가 보다. 바로 먹기가 아까워서 책상에 가져다 두고 오래오래 바라본다. 사진도 찍어뒀다. 일이 고될 때면 잠시 그걸 바라본다.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한라봉라테를 마신다. 흰색과 주황색이 층을 이루고 있다.

스틱을 붙잡고 휘리릭 허문다.

'힘들었던 일과여, 너의 죄를 사하노라.'

화합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흰색도 주황도 아닌 흰색과 주황이 섞인 파스텔색이 되었다.


가끔은 점심시간에 혼자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한다. 라테를 시킨다.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라테 아트가 사랑스럽다.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켜고 한 모금 마신다. 역시 음악과 커피의 조합은 100% 승률의 실패 없는 조합이다.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라테 아트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퇴근 대신 스타벅스로 향한다. 야근을 위한 저녁을 먹기 위해서다. 분홍빛 노을이 수채화 같다. 저녁으로 커피와 블루베리 케이크를 먹는다. 블루베리와 흰색크림의 조화가 깔끔하다. 예쁜 케이크를 보니 쌓였던 피로가 조금 가시는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씻고 눕는다. 잠들기 전 핸드폰 속 사진을 들여다본다.

'아, 이 케이크 예뻤어.'

'아, 아까 그 커피는 향이 좋았어. '

핸드폰을 보다가 잠이 든다.



병이 난 이제야 깨닫는다. 그때의 소소한 행복들이 나를 지탱해 주던 마지막 피난처였음을. 나를 지키기 위해 애쓰던 그날의 노력들. 나는 이제 도피가 아닌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그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나를 치유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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