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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못 마셔서 슬프다.

프롤로그 : 치유를 찾아, 나를 찾아.

by 커피중독자의하루

나는 갑자기 병에 걸렸다.

이 병에 걸리고 나서 슬픈 것 중 한 가지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잠 깨려고 한 잔, 맛있어서 한 잔, 친목으로 한 잔, 집중하려고 한 잔. 그렇게 마셔왔던 커피를 마시지 말라니,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지금 이런 소리도 약간의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니 하는 배부른 소리지만.


처음 발병했을 때는 잠시도 틈이 없이 계속 머리와 얼굴이 아팠다. 말만 해도 아프고, 이를 닦아도 아프고, 머리를 감아도 아팠다. 병원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나면, 그 강도가 8~9까지도 올라갔다. 장롱면허이기도 하지만, 운전을 잘한다고 가정해도 갑자기 휘몰아치는 통증 때문에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다음에 병원 갈 때는 택시를 탔다. 그래도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최소 6~7 정도의 통증은 감수해야 했으니까. 병원 가는 일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집에서 누워만 지냈다. 하지만 그런다고 안 아픈 건 아니었다. 불시에 강한 통증이 나를 덮쳤고, 그 텀이 매우 짧아서 이러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게다가 젊은 사람이 누워서만 지내니, 안 아프던 곳도 아프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께 말하니 운동은 하셔야 한다고 했다. 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1~2시간 정도 산책을 했더니 그 순간만큼은 통증이 좀 적게 느껴졌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니 약이 듣기 시작했는지 통증이 발현되는 텀과 강도가 줄었다. 이 닦거나 머리 감을 때의 강렬한 통증은 사라졌다. 말할 때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통증 강도로 바뀌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은은하게 2~3 정도의 통증은 계속 있었다. 그리고 외부 활동(주로 병원 가는 활동)을 시작하면 5~6 정도의 통증, 그 활동이 길어지면(주로 병원 대기나 병원 관계자와 대화하는 일) 7~8까지의 통증이 지속됐다. 병원 대기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통증을 못 견디고, 울 뻔한 적도 많다. 이런 사정이니,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와도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못 알아듣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던 것 같다. 아파서 누워 지내는 중에도 유익한 정보를 담은 유튜브를 보거나 최소한 재미있는 영화라도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려워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강제 휴식 기간 동안 할 일들을 계획하기도 하고, 문화 프로그램 수강 신청도 했다. 물론 하루 나가고 바로 포기했지만. (너무 아파서 수업 시간 동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나니 1주일에 한두 번 4시간 정도의 외부 활동이 가능해졌다. 나는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봉사 활동을 하는 중에도 계속되는 2~3 정도의 통증과 때때로 휘몰아치는 짧은 시간 동안의 5~6 정도의 통증은 감수해야 했지만.

봉사활동은 일주일에 각 1회씩, 이용자 1~2명인 작은 도서관에서 카운터 보는 일과 손님 3~4명인 카페에서의 바리스타 일이었다. 왜냐하면 매일을 통증과 함께 홀로 집에 있자니 우울증이 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봉사를 하면서 다른 봉사자분들과 대화를 하니 우울감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끝나고 나면 통증이 심해져서 나머지 요일들은 시체처럼 지냈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도서관 봉사를 포기했다. 발병한 지 9개월쯤 되자, 통증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3~4 정도의 통증은 아파도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아프긴 아프니 표정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찡그리는 시간들이 잦았다. 발병 후 11개월이 되었을 때는 파리여행도 갔다. 통증이 언제 올지 몰라서 갈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걸 감수하고 가기로 했다. 뭘 배울 수도 없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없이 지내니 우울이 바다처럼 나를 삼켜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좋은 것을 보고 즐겁게 쉬다 오면 나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하지만 파리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아프다.

어제는 의사 선생님 두 분을 만났다. 오전에는 주된 병으로 진료받는 3차 병원에 갔고, 오후에는 최근 발병한 목디스크 치료를 위해 정형외과에 갔다. 주된 병을 위해 다니는 3차 병원 근처의 처음 방문하는 정형외과였다. 의사 선생님이 혹시 지병이 있느냐고 물어서 내 병명을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그 병과 관련하여 이것저것 설명해 주시며, 그 병은 운동선수처럼 먹어야 낫는다고 하셨다. 운동선수처럼 양질의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먹는 얘기가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하소연이 나왔다.

"선생님, 커피를 못 마셔서 너무 힘들어요."

라고 배부른 고민을 말하자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개인 캐비닛을 여셨다. 그 안에는 일리 커피머신과 원두가 들어있었다.

"커피 마셔야죠. 그 맛있는 걸 어떻게 안 마셔요."

알고 보니 의사 선생님도 커피 마니아셨다. 의사 선생님은 카페인 함량 200mg 이하로 마시면 괜찮다고 하시며, 개인 캐비닛 속 원두를 추천해 주셨다. 단, 설탕은 절대 넣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 병에 커피가 안 좋긴 하지만, 카페인 함량 적은 걸로 마시면 돼요. 아니면 디카페인 커피나요. 좋아하는 건 먹고살아야죠."

고마우신 선생님, 목디스크와 상관없는 병에 관련해서도 이렇게 친절하게 말씀해 주시니 참 감사했다. 발병한 지 딱 1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너무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이 있어서 따뜻한 분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늘 곁에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처음 보는 내게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병은 내게서 일상의 기쁨을 앗아갔다. 하지만 동시에 '나'라는 존재를 되돌아보고, 주변의 따뜻한 사람들을 발견 또는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병에 걸렸을 때 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왜 내가 병에 걸렸을까? 내가 잘못해서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 그 속에서 치유함을 찾기 위해 지금부터 어린 시절까지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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