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잠들어줘, 자기혐오균
어.. 그게..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횡설수설하는 내 말을 듣다 회사 동료가 똑 부러지게 상황을 설명한다. "와 어떻게 저렇게 말을 조리 있게 잘할까. 나는 왜 이렇게 똑 부러지지 못할까.."
오늘도 또 실수를 했다. "네가 그렇지 뭐. 역시 넌 안돼."
나에 대한 칭찬을 들었다. 민망하고 불편하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겠지 뭐."
집에 와서 SNS 켰다.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맘껏 뽐낸다. "나는 왜 잘하는 게 없을까..?"
사람들은 내가 한없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괜찮다고 말하는데 진짜 내가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면 그렇다, 이걸 자기혐오 상태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건 내가 지금 말한 그대로 하나의 상태일 뿐이다. 감기에 걸렸다 회복하는 것처럼. 물론 이 과정이 쉽진 않다. 나에겐 5년이 걸렸다. 그리고 완벽하게 벗어났다라고 말할 순 없다. 아직도 자기혐오균이 내 안에 잠들어 있고, 나는 이 균이 다시 깨어나서 날 아프게 만들지 않도록 잘 컨트롤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하고 싶다. 이 자기혐오균을 잠재우는데 내가 효과를 봤던 방법이다.
1. 나를 남이라고 생각하기
남이 실수를 했을 때 나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왜 내가 실수를 할 땐 그렇게 가혹하게 구는지. 그래서 내 실수에, 혹은 내 모자란 부분이 보여 "역시 너는 안돼"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남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역시 너는 안돼"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상처가 될 거 같아서 절대 하지 못할 말을 왜 나에겐 이렇게 쉽게 하는지.
더 나아가서 나를 돌봐줘야 하는 아기나 강아지라고 생각해 보자. 그들이 실수를 하면 당연하게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서 크는 거지." 란 말이 절로 나온다. 나도 아직 크는 중이다. 실수를 하며 성장해 가는 중이다. 실수를 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강아지나 아기처럼 내가 실수를 해도 귀엽게 넘어가주자.
2. 운동, 가벼운 산책하기
우울한 기분이 들면 운동이나 산책을 해라 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운동을 하면 행복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엔도르핀과 도파민이 나와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또 산책을 하며 햇빛을 쬐면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이 호르몬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이 세로토닌이 밤에는 멜라토닌으로 변환된 잠을 잘 자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자기혐오의 감정이 들 때마다 이어폰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무작정 걷다 보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자기혐오의 악순환을 끊는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걷고 다시 집에 돌아오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무언갈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단, 주의할 점은 산책 후 집에 와서 다시 스마트폰을 켜지 말 것. 스마트폰에 다시 빠지게 되면 그 속에 있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다시 자기혐오에 빠질 수 있다. 산책 후에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다른 것들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면서 점점 나아질 수 있었다.
3. 나를 가꾸기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들은 나를 돌보지 않는다. 그러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면 우울해지고 다시 자기혐오에 빠지며, 쳇바퀴처럼 이 과정이 반복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자신감이 높았던 시기는 나에게 시간과 노력을 가장 많이 투자한 시기였다. 꼭 외적으로 가꾸는 것뿐 아니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배우고 싶은 것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나를 제일 우선시했을 때.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한테는 시간과 돈을 잘 쓰면서 왜 나한테 쓰는 건 항상 아까운지. 가족도 중요하고 친구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나를 가꾸는데 시간과 돈을 제일 먼저 쏟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올라가고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다.
4. 칭찬하기
나는 남의 장점을 잘 찾는다. 그래서 칭찬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에게만은 칭찬에 인색했다. 나한테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보였다. 나를 남처럼 생각하기의 연장선상으로 남에게 칭찬을 잘하는 만큼 딱 그만큼 나에게도 칭찬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주 소소한 것이라도 "잘했다. 나 자신 칭찬해."라고 입으로 내뱉으며 토닥토닥해줬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계속하다 보니 정말 누구에게 칭찬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늘 나는 모자라기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하는 게 많은 사람이었구나.
5. 온전히 받아들이기
자기혐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라고 한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특별한 나 자신이 잘됐으면,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미워해서 생기는 감정이라고 한다. 어쩌면 나는 나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특별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말은 쉽지만 쉽지 않은 이 문장을 지금도 항상 받아들이려는 연습 중이다.
또 언제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자기혐오균이 일어나 자기혐오의 시간이 나에게 찾아올지 모른다. 아니, 또 찾아올 거다. 그런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감정에서 마냥 허우적거리지 않고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점이다. 너무 아팠지만 내가 좀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 예방주사를 미리 맞은 느낌이랄까. 지금 너무 아프다면, 앞으로의 인생에 덜 아프기 위해서 예방주사를 맞는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시간이 분명 당신을 더 성장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