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마무리되는 12월의 중순,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친정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축하한다. 너도 이제 학부모네~”
그렇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부모들은학부모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새 학기가 시작되기 몇 주 전부터 아이의 입학 준비를 했다. 책가방을 사고 굳이 살 필요도 없는 책상을 사고 입학하고 입을만한 옷가지들도 조금 샀다. 이제 학교에 다니니 유치원 때 입었던 알록달록한 옷 말고 학생스러울만한 색감의 옷들로 장만했다. 글쎄, 나는 그랬다. 아이가 한글을 완전히 떼지 못한 것, 더하기 빼기를 못 하는 것은 그리 걱정되지 않았고 어떤 선생님을 만날지 어떤 친구들을 만날지가 걱정이었다. 학습은 어차피 때가 되면 속도를 내어 따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것이 남들보다 좀 늦어도 괜찮다. 하지만 괴팍한 선생님을 만나거나 얄미운 친구들이 많은 교실이라면 아이는 학교가 싫어질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2명의 괴팍한 선생님을 만났다(솔직히 1, 2학년 땐 어땠는지 기억이 거의 나질 않아 제외하고). 3학년,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그들은 자기 기분 따라학생들을 대했기 때문에 늘 무서운 존재였다. 또 노골적으로 촌지를 밝혔고 부모님이 학교를 들여다보지 않는 아이들을 대놓고 차별했다. 나는 차별 당한 아이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몇 가지 일들이 있는데 3학년 때의 일이었다. 숙제를 깜박하고 챙겨가지 못한 나는 숙제 안한 친구들과 함께(한 10명은 됐다) 교실 앞에 서서 차례로 선생님께 매를 맞았다. 그때 우리 반에 부모님이 교수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그날 숙제를 내지 않았다. 선생님은 "너는 훌륭하신 부모님이 있는데 이렇게 해서 되겠니? 부모님 이름에 먹칠하는 거야!"라 소리치며 무지막지하게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공포스러웠던 우리들은 벌벌 떨며 맞을 차례를 기다렸다. 선생님은 6명 정도를 때리더니 나를 포함해 남은 4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때릴 가치도 없다. 나가."
당시에는 체벌이란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였으니 때리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부모님이 훌륭하시면 자식도 같이 훌륭하게 커야 하 니 숙제 안 한 벌 을 꼭 받아야 하고 부모님이 그저 그러면 ‘뭐 굳이, 귀찮게.’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이었던 거다. 그런 생각으로 아이들을 대했으니 1년 내내 나는 그냥 '관심 밖'의 학생으로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가끔 이런저런 일로 학교가 가기 싫을 때 엄마에게 말을 하면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공부만 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나도 공부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내 마음 보듬어 주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오면 오늘 어땠는지 물어본다. 기쁜 일이 있었으면 같이 기뻐하고 화가 났던 일이 있으면 공감해준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알림장을 보고 숙제를 봐주고 준비물을 챙기는 것, 매주 월요일 깨끗이 세탁한 실내화를 신기는 것, 매일 마실 물을 보온병에 챙겨주는 것, 담임선생님이 요구하는 서류 등을 곧바로 제출하는 것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받아쓰기 몇 개를 틀렸는지 왜 틀렸는지 넌 왜 아직 손가락을 써가며 더하기를 하는지를 묻는 것보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과는 재밌었는지를 물어보자. 처음 1학년이고 그래서 아직은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보듬고 안아주는 것을 입학했다고 해서 달라질 풍경은 아니다. 입학했다고 '다 큰 애'가 된 것은 아니다. 이제 곧 있으면 겨울방학이고 그렇게 두어 달을 보내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다. 아이는 자라고 학교생활도 조금씩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언제나 변하지 말아야 한다. 부츠를 신고, 두꺼운 외투를 입고, 무거운 가방을 힘겹게 어깨에 맨 채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언제나 응원의 박수를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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