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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Mar 07. 2017

'가족'의 탄생

#22. 집은 무엇인가

2월이었다. 문득 사진을 찍는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우리 가족사진이구나. 마음이 말캉말캉 해졌다...


사진을 딱! 찍는데 어찌나 마음이 뭉클하던지...


난 2015년 6월 모든 걸 훌훌 던져버리고 유랑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내가 왜 떠나는지, 그리고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고 그저 혼란스럽고 일단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그저 내 마음이 편해지는 곳만을 찾아다녔다. 물론 처음에는 '한국병' 이 남아있어서 뭔가 '가야 할 것 같은 곳'을 다녔는데 나중에 다 집어치우고 (꺼져-) 그저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아무런 편견 없이, 잣대 없이, 그냥 꼴리는 대로 그렇게 다녔다. 그렇게 존나 솔직해지면 내가 비로소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참 웃기는 게 난 여행을 싫어하는 인간이었다. (현재로서는) 굳이 그곳에 가서 체크리스트를 체크하고 다니는 것이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치앙마이에 살게 된지 무려 6개월이 되어가는데 그 흔한 (?) 빠이도 안 가봤고 근처 국가들인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도 안 가봤다. (...) 그럼 뭐했냐. 


난 집을 찾고 있었다.



공동체, 커뮤니티, 농장, 블라블라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꿍짝꿍짝한다 싶은 곳은 다 가봤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그냥 내가 합세"였다. 그래서 날씨 좋고, 사람 좋고, 물가가 저렴해서 살기 좋은 태국 치앙마이에 덜컥 셰어하우스를 시작한 것이다. 근데 워낙 집을 운영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빡세서 (...) 이래저래 치이다 보니까 내가 이걸 왜 시작했더라... 음? 뭐였지... 까먹었음 수준이 되기에 이르렀는데.


어제 오토바이를 오래 타서 집에 오니 꽤나 피곤했는데, 거실에 가니까 짠! 저녁밥이 준비되어있었다! 배고팠지~ 하면서- 그래서 정신없이 밥을 먹고. 고마운 마음에 발 마사지를 해줬다. 어깨너머로 배운 태국 마사지인데 참 유용하다. 그렇게 열심히 마사지를 하고 있는데 다른 한 명은 열심히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고, 나머지 두 명은 강아지랑 놀고 있다.


뭐지, 여기가 더 "집" 같은뎁쇼?


든든한 식구들


물론 부모님, 언니랑 같이 사는 "집" 그리고 "가족" 이 있다. 하지만 내 나이 30대, 때때로 찾아가는 '집'은 따스하지만 또한 동시에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독립' 말이야 쉽지. 독립을 위해 결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월세 생각하면 뭔가 고구마 10개 먹은 거 마냥 답답하다. 그렇다고 내가 돈도 없고, 결혼도 안 했으니까 부모님과 같이 계속 살기에는 머리가 너무 커져버렸지. 그래서인가? 난 '집'을 찾아다녔다.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집에 와서 저녁밥 먹으면서 꺌꺌 거리면서 푹 쉴 수 있는 집. 함께 쓰잘데 없는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족.'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물론 가끔 툭닥거릴 수 있지만, 그래도 외딴곳에서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집.'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처럼 매일매일 바뀌는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여행자가 아니라, 적어도 최소 한 달은 함께 부대낄 수 있는 그런 '가족' 말이다. 이때까지 방문한 멤버들과 상황을 고려할때 치앙마이 '집'을 가능하게 한 조건은 아래와 같았다.


1. 외국: 치앙마이는 나에게도 '외국'임. 멤버들에게도 '외국'임. 서로 겁내 의존할 수 밖에 없음.

2. 최소 한달: 멤버들은 최소 한달을 여기 살아야함. 그래야 부대끼면서 가족이 되는 것임.

3. '따로 또 같이': 함께 있을 때는 어울리지만, 또한 각자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중요함.

 4. 여행자 보다는 거주민: 각자 개인의 프로젝트가 있는 상태에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같이 밥 먹으면서 고민상담을 함. 여행자들은 아무도 같이 안 놀아줄 것이므로 심심할 수 있음.

5. 호기심: 굳이 사교적이거나 활발하거나 영어를 잘하거나가 중요한 것이 아님. 왕성한 호기심이 있다면 궁금해서 본인이 알아서 서로서로 친해지고 치앙마이를 여기저기 쑤시고 다님.


치앙마이, 이 곳은 나에게도 외딴 국가이며 잘 모르는 곳이다. 그래서 나도 우리 식구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비교적 이 곳에 오래 머물렀던 나에게 의존하고 말이다. 그렇게 서로 기대고 도와주고, 때로는 툴툴거리면서- 가족을 만들었다. 집을 만들었다. 나. 꽤나 잘한 것 같다. 하하.




다들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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