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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립소 Sep 30. 2022

이방인은 외부인이 되어

폭우 속 여수의 우울 일지

일러두지만 여수에 악감정은 없다. 급변한 대한민국 택시 시장을 습득한 첫 번째 관문이자 머물러 있는 1박 2일 동안 그저 나와 파트너는 운이 없었을 뿐. 유일한 관광이었던 오동도와 해상 케이블카. 폭우로 인해 롯데마트에서 7시간 감금되었던 게 전부였던 불운한 여행. 그래도 게장정식 먹었으니 할 건 했다.

문제는 게장 골목에서 식사 후 파트너 속옷 가지를 사러 롯데마트에 간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먼저 구조가 희한해 찾는 데도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마트 주요 소비 주체가 성인 여성이라지만 남성 속옷은 상상할 수 없는 생필품 코너 구석에 숨겨놓고 종류도 한 가지밖에 없을까 의아했다. 여수 남성들은 속옷을 어디서 사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5개 들입 만원 짜리 중국산 남성 팬티, 양말 두 쪽, 페리에서 먹을 주전부리 등을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거센 바람과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 비에 잠시만 서 있어도 흠뻑 젖어 버릴 것이다. 우린 다음 날까지 세탁이나 세면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폭우 속에 발 내밀기 주저했다. 왜냐하면 이미 호텔 체크아웃은 완료했고 (짐만 맡겨둔 상태) 하루 동안 잘 버텨 새벽 한 시에 제주행 페리를 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버스정류장까지 거리가 있어 마트 입구에서 택시를 잡아보려고 시도했다. 외진 동네기도 하고 미친 폭우에 달리는 택시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서너 대의 ‘빈차’ 등이 푸르게 켜진 택시가 지나가는 걸 보고 크게 손 흔들어봤지만 단 한대도 우리 앞에 멈추지 않았다.


연이은 택시 승차 거부, 가족과의 통화 그리고 인터넷 검색 후 조금의 정보를 익힌 후에야 알았다. 대한민국 택시는 카카오 콜로 장악되었단 사실을. 마트 내 어느 카페에 앉아 카카오 택시 어플을 깔아보려 애썼지만, 쌍욕이 절로 나오는 그놈의 본인 인증. 허가도 안될 보안 앱 설치 요청. 아악! 이놈의 나라는 본인 명의 핸드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분노에 가득 찬 나는 계속 미친 여자처럼 엄한 핸드폰에 일갈을 쏟아냈다. 콜택시 서비스를 찾으려 해도 국내 전화가 되지 않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톡 오픈 대화방에 ‘여수 콜택시’를 검색해 여러 사업자를 컨택했는데, 다 장거리 운행만 한단다. 헛웃음만 나왔다.

감금된 지 네 시간쯤 되었을 때 마트 고객센터에 사정 설명하며 여수 콜택시 서비스 한 군데만 전화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지만, 우리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더니 114에 물어보라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왔다. 젠장! 그렇게 설명했는데. 인터넷만 되는 해외 핸드폰이라고... 추접스럽다 생각하고는 더 이상 도움을 구걸하지 않았다.

오후 8시쯤 되니 빗줄기가 잠시 잠잠해졌다. 이때를 틈타 빠르게 버스정류장으로 달렸다. 미처 해가 지지 않은 어둑한 항만대로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횡단했다. 드디어 여수 롯데마트에서 탈출하는 순간이다.


제주행 여객선을 타기까지, 남은 여행을 모조리 취소할까 싶을 정도로 여수에서 우울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없다. 태어나고 자라며 교육받아 모국어가 통하는 이곳에서도  아무것도   없구나. 여수 중앙로를 달리는 버스 ,  앞을 지나는 드골장군대로 위에서든,  어디서든 이방인이라는 반복적인 상념만 들었다. 분노를 넘어 자책으로 전이된 나의 감정들과 계속되는 악천일기예보. 여행을 이어갈  있을지 의문이었다. 짐을 찾으러  호텔 카운터에서 불러준 콜택시 덕분에 여객터미널까진   있었다.  여행할 상태가 아니라면 모두 취소하고 여수엑스포역에서 상경하는 기차라도  심정으로.


빗속에 죽어도 트렁크를 허하지 않은 기사와 실랑이 한 덕에 두 캐리어는 나와 뒷좌석 승객 좌석에, 파트너는 불통의 기사 옆 앞자리에 자리 잡았다. 빗물 묻은 플라스틱 캐리어를 좌석에 놓으면 그도 시트 청소가 불가피할 텐데. 도대체 이 사람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다! 트렁크에 못 볼 것이라도 숨긴 걸까. 여수 택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복잡한 심경으로 페리 대합실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어찌 됐든 오랜만의 한국 여행인 파트너를 우선으로 생각했고 그에게 나쁜 기억으로 여행을 종결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제주행을 다시 결심했고 자정이 넘은 시간 골드 스텔라호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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