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문장을 읽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해지는 독서

by 마부자


금주 132일째, 오늘 아침에도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떴다. 평범하다는 건 어쩌면 지루하다는 말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오늘 아침은 그러지 않았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바람은 오랜만에 계절을 느끼게 했다. 봄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선선하고 기분 좋은 바람. 그 감각 하나로 하루의 시작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제목: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서툴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어제 보고 오늘 보아도
서툴고 새로운 너의 얼굴

낯설지 않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금방 듣고 또 들어도
낯설고 새로운 너의 목소리

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던가......
이 목소리 들었던가......
서툰 것만이 사랑이다
낯선 것만이 사랑이다

오늘도 너는 내 앞에서
다시 한 번 태어나고
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
다시 한 번 죽는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늘 하던 대로, 아내와 막내는 정해진 시간에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집 안이 고요해진 뒤, 주말 부터 읽고 있던 <톰 소여의 모험>을 끝까지 읽었다.


특히 이번에 톰 소여의 모험, 그러니까 어린 소년들의 모험이야기를 읽으며 깨달음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부러움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톰이 친구들과 함께 해적처럼 섬으로 떠나는 장면을 읽으며 아무런 설명도 책임도 없이 그저 가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배를 타고 멀어지는 모습이 이상하게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그 장면을 읽는 내내 부럽다는 감정이 마음 한편을 조용히 흔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을 그다지 풍요롭지 않은 환경에서 보냈다. 그래서일까, 독립은 빠를 수밖에 없었고 결혼도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었다. 살아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물론 후회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그 선택들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밀려난 것이 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내가 원하기 때문에 떠나는 여행 또는 누구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같은 의미의 것들.

톰은 그 자유를 당연한 것처럼 누렸다. 그 어린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현실을 잠시 등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섬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그런 충동을 단 한 번도 행동으로 옮겨본 적이 없다.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었는지 왜 그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지금의 삶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 안에 소중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때때로 묻는다.


나는 왜 단 한 번도 그런 모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대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나는 여전히, 그 자유가 조금 부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 자유가 부러웠다는 감정은 나를 멈춰 세우거나 어리론가 떠나는 무책임한 모습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멀리 떠나야만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아주 작은 방식으로도 자유는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평범한 아침의 바람처럼 책 한 권 속 문장처럼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다가온다.


이제는 떠나지 않아도 된다. 떠나지 않아도 내가 나를 느끼는 순간의 자유가 존재할 수 있다.


앞으로의 나는 그 작은 자유를 삶 속에서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톰의 여정을 함께 하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책을 덮고 난 뒤, 원래대로라면 운동을 해야 했지만 지난 금요일부터 2주간 운동을 쉬기로 했기 때문에 평소와는 다른 순서로 루틴을 이어 나갔다. 먼저 집안일을 마쳤고 그 뒤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았다.


본격적인 루틴을 진행한지 약 5개월 정도 되어간다. 전문적인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는 오랜 루틴을 이어온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지속한 운동을 멈춘 며칠 사이, 내 안의 리듬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느려졌다고 할까? 무언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불편함이 심하게 밀려왔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무심히 지나쳤을 생각들이 마음을 흔들기도 했다.

계획적으로 만든 느슨함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이 느슨한 시간은 내 안에 잠시 멈춰 설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반드시 부지런해야만 충실한 삶은 아니라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후에는 <톰 소여의 모험>에 대한 포스팅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읽었던 세계문학전집 중에서는 <1984> 다음으로 두꺼운 책이었지만 페이지 수만큼의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 읽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다. 이번엔 평소처럼 책 곳곳에 플래그를 붙이지 않았고 형광펜으로 밑줄도 거의 긋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은 원래 그런 식으로 읽는 것이 맞다. 분석하거나 해석하려 애쓰기보다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돌아가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에 몸을 맡기고 그 안에 자신의 옛 모습을 자연스럽게 투영하며 읽는 책인 것 같다.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며 ‘이런 때가 있었지’ 하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방식의 독서말이다.


톰의 장난기나 모험심은 단순한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나도 한때는 그렇게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섰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래서 이 책은 두껍지만 가볍고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문장보다도 그 문장을 읽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해지는 독서였다.


이 책은 읽고 난 뒤 무엇을 느꼈는지를 오래 붙잡기보다는 읽는 동안 잠깐 스쳐 지나간 감정들을 인정해주는 데에 더 어울리는 책인지도 모른다.


꼭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형광펜과 플래그 없이도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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