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엄마들, 육아의 유연함에 대하여
한국에서 "엄마"라는 단어는 어떤 이미지일까?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한국에서 '엄마'라는 말은 하나의 역할 이상이다.
엄마란 자고로, 한 손에는 육아가방, 다른 손에는 이유식, 머리는 질끈 묶고 눈엔 피곤이 어려 있지만, 아이 앞에서는 늘 “착한 엄마”여야 한다. 말투는 다정하고, 행동은 조심스럽고, 언제나 아이를 우선시하는 존재. 아이들과 키즈카페를 가거나, 스타벅스 같은 "눈치 덜 보이는"곳에서 아이에게 바나나 하나 쥐여주고, 어른들끼리 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수다를 나누는 것조차 어딘지 눈치를 봐야 하는 곳.
워킹맘이라면 죄인 그 자체다.
회사에서는 “애 핑계로 자주 빠진다”는 눈총을 받고, 육아 현장에서는 “일하느라 아이를 방치한다”는 비난을 듣는다.
그게 내가 알던 ‘한국의 엄마들’이었다.
이런 편견 안에는 하나의 가정이 깔려 있다.
엄마는 언제나 엄마다워야 한다는 믿음.
심지어 그 ‘엄마다움’이 뭔지 아무도 정확히 정의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프랑스에 오면, 엄마의 모습이 조금 다르다.
어린이집 앞 카페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엄마들, 유모차를 밀고 책방에 들러 책을 고르는 엄마들, 아이가 울고 칭얼대도 당황하지 않고, 무심하게 반응하는 엄마들.
칭얼대는 아이한테 "응 울어, 그런다고 엄마가 더 빨리 가진 않아"라는 말을 까르푸 매장에서 들었을 땐 신박하면서도 너무 맞는 말이라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누구도 이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혼자 웃는 나를 더 이상하게 볼 거다.)
엄마니까 그래도 된다거나, 엄마인데 왜 저러냐는 시선도 없다.
이렇게 프랑스 엄마들에게 ‘엄마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은 비교적 적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미술 수업을 듣는다든가, 평일 밤 남편 없이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 일도 자연스럽다. 아이에게 미안해하기보다, 엄마 자신이 ‘충분히 살아있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여긴다.
워킹맘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게 엄마가 일을 할 거라고 가정하고 말을 한다. 나야 일을 하지만,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조금 당황스러웠을 정도로.
사실 프랑스에서 엄마가 일을 한다는 건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기본값에 가깝다. 아이를 낳았든, 둘을 낳았든, 엄마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프랑스에서는 ‘엄마이기 때문에’ 커리어를 멈춘다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멈춘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 다른 이유가 있을 뿐, 육아는 그 자체로 커리어 단절의 ‘당연한 원인’이 아니다.
출산과 육아는 삶의 일부이지, 삶 전체를 집어삼킬 만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엄마다움"은 정해진 그림이 아니다.
아이와의 거리를 죄책감 없이 조절하고, "나"라는 사람을 지켜내는 것이 당연한 문화다.
한국식 표현으로는 “이기적”일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게 지속 가능한 육아, 그리고 자기 삶과의 건강한 거리 두기다.
프랑스에서 내가 배운 것은 "엄마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사는 법이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내가 희미해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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