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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Snoopy Dec 23. 2018

내게 수영을 하게 만든 세 남자

수영 한 번 해 보실래요?

흔히들 40대에는 30대에 운동한 체력으로 버틴다... 고 한다.

나는 보는 것도, 하는 것도 딱히 좋아하는 운동이 없다. 월드컵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응원은 해본 적 있으나 자국 경기, 그것도 한일전 정도 되어야 응원을 위해 자리를 지키는 정도다.

그래도 건강을 위해 뭔가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몇 년째. 그간 물망에 올랐던 운동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탈락했다.

* 발레 : 클래식을 들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서. 하지만 유경험자인 친구 말에 따르면 일단 키가 큰 편이면 아주 마르지 않은 이상 점프했다 착지할 때 쿵 소리가 나서 부끄럽단다.
* 요가 : 마음의 안정도 얻을 수 있고, 뻣뻣한 몸을 잘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집 앞 요가학원이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이라 바로 포기했다. 더 먼 곳은 금방 그만둘 것 같고.
* 방송댄스 : 몸은 뻣뻣해도 소울은 있다. 재밌게 춤을 추다 보면 건강도 얻을 것 같아서. 하지만 적절한 시간대를 찾지 못해 시작 못함.

하고 싶은 이유도, 꼭 시작하고 싶은 이유도 강하지 않던 어느 여름날, 자연스럽게 수영장에 등록하게 됐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나 계기는 한 가지로 꼭 집어 말할 수 없다.
- 미야베 미유키, 「진상(하)」


몇십 년 만의 폭염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던 8월 중순, 집 앞의 수영장에 새벽반을 문의하고 그대로 등록해버렸다.


땀나는 운동이 부담스러워 일단 수영이라면 땀은 안 나겠지란 생각에 등록했는데, 생각해보니 내게 수영을 하게 만든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수영이 이렇게 멋진가, 마이클 펠프스(Michael Phelps)


'펠피쉬'란 별명을 가졌던 미국 국가대표 수영선수. 올림픽 경기 중에서도 관심 있게 보는 종목이 남자 수영, 특히 접영(butterfly)다. 동네 스포츠센터의 25m 풀장이라면, 두세 번에 도달할 수 있는 영법. 보는 건 정말 멋지다.


https://www.youtube.com/watch?v=X7bj_LUIY7Y


하지만 실제로 해 보면 수면 아래로 들어간 몸을 위로 다시 띄우기가 쉽지 않다. 강사님은 자꾸 박자를 맞추라고 하는데... 내가 맞추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마이클 펠프스는 올림픽 경기장의 50m 거리도 몇 번 만에 훌쩍 도달할 수 있는 선수들 중에서도 단연 뛰어나다.


그냥 멋있어서... 도 맞지만 수영이 참 보기 좋은 운동이구나 란 생각이 들게 해 준 선수다.


성실한 작가의 체력,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Murakami Haruki)


어릴 때 읽은 하루키상은 "뭐 이런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작가가 다 있나"였다. 하지만 나이 들어 보니 "이렇게 성실함의 표본인 작가가 다 있나"이다.


하루키상은 매일매일 집필을 하는 건 물론이고, 혼자서 일하는 작가라는 직업에 꼭 필요한 것이 '체력'이라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달리기를 주제로 한 책도 쓴 적이 있지만, 땀나는 게 싫은 나는 여기서 굳이 또 수영에 주목을 했다. 하루키상이 수영을 한다면, 나도 수영이다! 개연성이 부족해도 어쨌든 운동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혹자는 하루키상의 글을 '겉멋 든 대학생이 좋아하는 글'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라는 링에 올라가서 40년 가까이 글을 성실하게 써온 작가라면, 그 행보 자체가 존경스럽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글을 써 온 하루키상은 정말 성실의 아이콘이다.

수영장에 가지 않는 날은 나도 달리기를 해야지, 생각했지만 나 역시 한결같다. 이제 5달째가 되어가는 수영을 거의 빠지지 않고 가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달리기는 조금 더 따뜻해진 다음에 해야지...

가상인물이지만 한결같아, 카케이 시로


인생 만화로 꼽는 「어제 뭐 먹었어?」(요시나가 후미)의 주인공 카케이 시로. 1권에서는 43세로 나오지만 최신간인 13권에서는 이미 53세 생일을 맞았다.


최신간 13권, 우측 에피소드는 11권

쪼잔해 보일 정도로 절약할 때는 절약하며, 자식에게 의지할 수 없는 게이가 믿을 것은 돈뿐이라고 주장하는 시로 씨. 그의 몸 관리 비결은 매일 정성껏 요리해 먹는 건강한 가정식뿐 아니라 20년 가까이 지속 중인 수영도 포함돼있다.

주 2회 수영을 끊고 나서 뭔가 모자라지 않나 싶을 때마다 생각나는 시로 씨의 건강 비결이다. 비록 5개월째지만, 나도 가늘고 길게 시로 씨처럼 수영을 지속하려고 한다.




뭐든 시작이 어렵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어떻게든 이끌려 지속할 수 있다.


아직 어두운 새벽, 수영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면 뭔가 해냈다는 느낌이 든다. 수영을 마치고 이른 출근을 하는 사람들을 거슬러 집에 오면 오늘도 잘해보자는 마음이 든다. 생활에 활기가 더해지는 것도 큰 수확이다.


더구나 지금은 추운 겨울. 사람들이 수영장을 찾기 쉽지 않을 시기다. 인원이 상대적으로 적어 레슨을 받기도 좋다. 이왕 수영을 시작한다면, 지금 시작해보자.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수영 세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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