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를 넘어 다시 쓰기로
회사에서 몇 년간 다른 사람들의 글을 고쳤던 적이 있다.
주제가 정해진 글이 대부분이라, 마감 안에 받은 원고를 정해진 일정대로 발행해야 했다.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는지라, 원고를 받아보면 정말 천차만별이었다. 직접 하나라도 오탈자가 생길까 봐 맞춤법 검사기를 몇 번이나 돌려보내는 필자. 글은 거의 완벽한 경우다. 하지만 어떤 필자는 사진과 뼈대만 준 글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왜 그런 글을 받느냐고 묻는다면, 행사 후기 등 꼭 관련 인원이 작성해야 하는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필자는 나름 열심히 작성했지만, 글 규격이나 흐름, 꼭 필요한 정보가 빠져 손을 많이 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글을 고쳐서 검토를 요청하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돌아온다.
"허술한 글을 이렇게 읽을 만하게 고쳐주다니 고맙습니다."
"아니 제 글에 왜 이렇게 손을 많이 댔나요? 너무 많이 고친 것 아닌가요?"
그래도 글은 고쳐야 한다. 작성자가 못 고치면, 누구라도 고쳐줘야 나중에 받을 지적에서 자유로워진다.
다른 사람의 글은 쉽지는 않지만 고칠 부분이 잘 보인다. 맞춤법이나 비문은 물론이고, 어느 부분을 강조하면 좋을지, 어떤 추가 자료를 더 넣으면 보기 쉬울지 등...
하지만 내가 작성한 글을 고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특히 글을 작성하고 난 직후가 그렇다. 잘 쓰든 못 쓰든 내가 낳은(?) 소중한 글이라 그런 듯. 그래서 많은 글쓰기 방법론에서도 퇴고는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에 읽어보라고 한다.
퇴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헤밍웨이는 그의 저서 <헤밍웨이 작가 수첩>에서 무얼 쓰든 초고는 가치가 없다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본인이 고쳐쓰기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여러번 말한 바 있다.
당장 블로그에 글만 써 봐도 퇴고의 중요성은 잘 알 수 있다. 며칠, 아니 다음날에만 글을 읽어봐도 글 작성 직후에는 보이지 않던 오탈자며, 비문이 수두룩하다. 어떤 경우에는 추가하려고 준비해 둔 이미지를 넣지 않거나, 소제목 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브런치를 이용하면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기능이 '맞춤법 검사' 기능이다. 아직 PC버전에서만 지원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띄어쓰기 등을 고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맞춤법이 아닌 날짜, 사람 이름 등 팩트체크도 중요하다. 물론 나중에 고칠 수도 있지만 내가 고치는 편이 낫지, 다른 사람이 지적해서 고치면 뭔가 더 아쉬워진다.
내 글도 집처럼 리모델링을 해보자
퇴고를 넘어서 예전에 작성했던 아쉬운 글을 고쳐 써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요리를 하거나 무언가를 손으로 만드는 일도 즐겁지만, 내가 썼던 글을 조금 더 완성도 있게 고쳐보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 줄은 몰랐다.
일단, 내가 직접 내 글을 고치는 것이므로 아쉬웠던 부분을 충분히 보강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는데 이런 표현이 부족했구나, 여기에는 이 내용을 추가하면 이해가 더 잘 되겠구나 등.
간단한 터치만으로도 글이 살아난다
벌써 1년 전에 쓴 글이다.
https://blog.naver.com/jsatoy/221164790860
글쓰기 모임에 처음 참가해 작성했던 글이다. 매주 글을 완성하는데 급급해, 나중에 다시 봐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또한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이라 조회수도 정말 안타까웠고...
브런치에 옮겨 약간의 터치를 했다. 소제목과 약간의 이미지를 추가하고, 어색한 부분을 수정한 것만으로도 훨씬 읽기 편한 글이 되었다. 물론, 브런치에 발행한 글의 조회수는 10배 이상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https://brunch.co.kr/@madamesnoopy/28
뼈대만 두고 완전 리뉴얼
모리 카오루의 <엠마>, <셜리>로 빅토리안 시대를 다룬 만화에 대한 얘기를 쓴 적이 있다.
https://blog.naver.com/jsatoy/221159867977
하지만 이 만화를 좋아하는 만큼 충분히 담아낸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쉬운 마음에 뭔가 고쳐보자고 시작했는데 여기저기 손을 대다 보니 소재만 같을 뿐, 완전히 새로운 글이 나와버렸다.
https://brunch.co.kr/@madamesnoopy/38
배경인 빅토리아 시대 관련 내용이 상당 부분 추가됐고, 만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도 나름 깊이 있게 담았다. 내가 보기엔 첫 번째 글보다는 훨씬 읽을만한 글이 된 것 같다.
끓이기만 하면 되는 인스턴트 라면에도 각자의 고유한 레시피가 존재한다.
어떤 이는 면을 따로 삶아 기름기를 제거하고, 파와 마늘은 물론, 각종 야채와 여러 가지 부재료를 추가해 완전히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글도 마찬가지.
내가 이미 작성해 둔 글이라도 여러 번 생각해 또 다른 글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있다. 일단 글을 썼다는 것은 그 주제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주제를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글을 여러 편 쓸 수도 있지만, 이전에 써둔 글을 고쳐보면 더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올 수도 있다.
글쓰기에 지쳤다면, 새로운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예전에 쓴 글을 다시 만나보면 어떨까?
+ 이 글을 발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런치 모바일에서도 '맞춤법 검사 기능'이 추가됐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