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튀니지 - 튀니스 메디나와 프랑스 문
파란 대문
튀니지에서는 어딜 가든지 흰색의 벽, 밝은 푸른색의 대문과 발코니, 그리고 푸른 대문을 닮은 튀니지의 하늘과 지중해를 마주한다. 7세기 이후 비슷한 시기에 이슬람화가 되었던, 같은 문화권인 알제리나 모로코의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푸른색은 이슬람권에서 신성시하는 색이긴 하지만, 식기나 도자기를 제외하고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서보다는 모스크에서 주로 사용한다. 그러니 모스크보다 생활 속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튀니지안 블루가 온전히 이슬람의 영향 때문은 아닌 것이다. 베르베르인들이 사막에서 입는 옷과 터번도 튀니지안 블루로 염색된 것을 즐겨 착용한다. 노랗고 붉은 모래와 푸른 색은 보색 관계로 눈에 잘 들어온다.
게다가 이슬람 모스크의 돔이나 벽을 장식하는 파란색은 간혹 밝은 파랑도 있지만 royalblue나 cobaltblue와 같은 진한 파란색이 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튀니지의 일반적인 주택의 대문이나 발코니 등에 칠해진 파란색은 deepskyblue와 dodgerblue에 가까운 밝은 파란색이다.
수천 년 전부터 살아왔던 베르베르족(또는 그들의 선조)과 페니키아, 로마와 반달족, 그리고 비잔틴, 7세기에는 기독교의 땅에 이슬람을 가지고 온 아랍 족까지, 지금까지 피는 섞이고 섞여 튀니지인 만의 수용하는 자유로운 DNA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들이 사는 주택의 문에는 그들의 역사가 담겨있다.
중국 남부의 어떤 소수민족은 화려한 옷에 그들의 역사를 새겨 넣듯이 튀니지안들은 누구나 드나드는 그들의 대문에 수천 년의 역사를 검은색 둥근못을 박아 그려 놓았다. 밝은 파란색의 문은 검은색의 문양을 돋보이게 한다. 대문 색이 명도가 낮은 진하고 강한 파란색이었다면 못에는 흰색을 칠해야 했을 것이다.
대문에는 페니키아 선조들이 숭배했던 타니트 여신과. 다윗의 별도 있고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와 물고기 문양과 베르베르족의 상징과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과 식물 문양 등이 먼 옛날부터 이 땅에 살았던 조상들을 기리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푸른 대문에 문신처럼 새겨 넣었다.
기원전 146년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에 의해 튀니스는 카르타지(카르타고)와 함께 파괴되었다가 100여 년 후 카르타고와 함께 재건되었으며 지금은 한적한 교외로 변한 카르타지(카르타고)에 비해 튀니스는 북아프리카 정치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바르도 뮤지엄에서 택시를 타고 구시가지인 메디나에 내려달라고 하니 맞은편에 정부청사 건물이 보인다.
메디나
메디나 입구에 있는 지도를 보면, 볼 것들이 그렇게 넓지 않은 메디나 안에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데 궁과 메데르사(성직자 학교)도 모스크와 영묘도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입구에 있는 영묘 Mausoleum부터 길목에 있는 1616년 지은 오스만 스타일의 모스크인 Youssef Dey 모스크의 미너렛을 보면서 옆길로 지나면 복잡한 메디나 골목에 들어선다. 유세프 데이 모스크 주변에 있는 El-Berka 시장은 전통적으로 이슬람 해적에 의해 잡혀온 기독교 노예들이 팔리던 노예시장이었다.
북아프리카인들은 해적질을 기업적으로 하는 몰타기사단(=로도스 기사단)과 기독교 사략선 해적(아이러니하지만 기독교 나라 정부에 허가받은)들에게 붙잡혀 기독교인들의 나라에 노예로 팔리고, 그 반대로 북아프리카를 본거지로 삼은 사략선(오스만 정부에서 허가받은) 해적들은 기독교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고, 그야말로 이곳은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돈이 움직이는 곳 중의 한 곳이었다.
좋은 향기가 나는 쪽을 따라가면 메디나의 유명한 El-Attarine향수시장, 질 좋은 허브 향 한 개 구입해서 넣어두면 여행 내내 향기로 행복해질 것이다.
메디나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카이르완의 그레이트 모스크와 비슷한 시기와 구조로 건축된 모스크인, 732년 세워지고 9세기에 개축한 지투나 모스크는 시간 때문인지 모르지만 들어갈 수가 없단다. 어디든지 ‘입장 불가’를 표한 곳은, 아예 볼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내 방식인데, 한나절 바르도 박물관에서 힘을 빼고 난 터라 이슬람 신자가 아니면 입장 불가라고 되어있으니 오히려 반갑다. 이미 머릿속에 오늘 들어갈 용량이 차 버린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세히 이 잡듯이 골목을 누비는 것은 다음에, 이럴 땐 아무 생각 없이 시장을 기웃거리다가 카페에 앉아 잠시 쉬는 것이 최선이다.
메디나를 빠져나오면 작은 광장 앞에 둔중하면서도 간결한 모양의 Bab Bhar(일명 프랑스 문)가 보인다. 문을 지나면 식민지시절 프랑스 구역이다. 1월, 분수가 나오는 빅토리 광장 옆, 파란색의 문이 우아한 카페에서 튀니지안처럼 카푸치노 한잔 앞에 두고 신문 대신 가이드 책을 뒤적인다.
인디펜던스 광장에서 클락 타워까지 이어지는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아름다운 거리는 파리의 샹젤리제를 닮은 부르기바 거리이다. 바르도 박물관에서 봤던 무장 경찰들의 모습이 부르기바 거리에는 가득하다. 경찰차는 거리공원을 따라 천천히 순찰을 돌고, 지나는 청년들을 잡고 검문을 하는 경찰들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맴돈다. 지금 나는 튀니스의 정치 1번지에 와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관광 국가의 경찰답게 외국인들에게는 관대한 눈빛이다.
1882년 프랑스에서 세운 성 빈센트 드 폴 교회 맞은편에는 14세기 하프스 왕조시대 튀니스 출신으로 명저 ‘역사서설Muqaddimah’로 유명한 역사학자요 사상가이며 세계적인 석학인 이븐 할둔Ibn Khaldoun(1332~1406)의 동상이 서있다.
시립 극장Theatre Municipal앞에는 정치 집회가 한창이다. 아르누보 스타일의 극장의 모습을 보려고 해도 운집한 사람들로 인해 윗부분만 보일 뿐 아래쪽은 보이지 않는다. 아예 극장 앞을 집회의 연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극장 앞의 거리공원에는 재스민 혁명의 진원지답게 자유롭게, 정치적인 이슈를 놓고 천막 안에는 전시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명도 받고 있었다.
별일이 아닌 일상적인 분위기라고 하기에는 거리의 분위기가 너무 진지하다. 하지만 정치는 정치일 뿐, 지나가는 튀니지안들의 친근함은 금새 긴장감을 날아가게 만든다.
1월 20일 이른 아침의 튀니지 공항, 몰타에 갈 비행기를 타기 전 게이트에서 본 뉴스에는 튀니지에서 시위가 일어났다고 한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다행히도 작은 시위였지만, 그들의 자유가 훼손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