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초록이기 이전에

by 갈매나무




올해 여름에는 정말 열심히 뛰었다. 매일 같은 곳을 뛰다 보니 무심결에 보면 똑같아 보일 풍경도 사실은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잎의 초록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초여름과 달리 잎은 꼭 아이의 색에서 어른의 색으로 변하듯 더 깊고 무거운 빛을 내는 것만 같다. 오늘 달리다 그 빛이 유독 눈에 들어와 한번 사진으로 남겨 보았다.




초록. 소리 내어 말해본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내가 본 색깔이 초록이 맞을까. 초여름의 잎이 내는 빛깔과 저물어가는 여름에 마주한 잎의 색이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똑같이 초록으로 그것들을 부른다. 단지 옅음과 짙음으로 그것을 구분하면서.



오늘 운동을 하기 전에 아이와 같이 그리기 숙제를 했다. 꽤 중요한 숙제이기에 내 48색 화가용 색연필을 꺼내 열심히 색칠을 하던 중, 아이에게 하늘색을 건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선뜻 색연필을 건네지 않고 어떤 게 하늘색이냐고 물었다. 무슨 말인가 싶어 보니 하늘색이라 할 수 있는 색연필이 세 개나 있었다. 아이는 그중 무엇이 하늘색인지 헷갈렸던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을 골라주어야 했을까. 그 생각이 운동을 할 때까지 이어져 잎의 색깔이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나뭇잎이 초록이기 이전에, 우리가 살아가기 아주 오래 전의 아이에게 잎은 무슨 색이었을까. 이 상상조차도 현재 여러 가지 초록색 계열의 색깔을 뜻하는 단어들로 정의해야 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저 초록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침엔 선녹색, 밤에는 암녹색, 빗방울 맺히면 진녹색, 햇볕을 받을 땐, 은색이었을지도. 나뭇잎이란 훨씬 더 많은 색을 보여주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나의 단어로써 정의하는 색은 사실 하나로써 정의될 수 없는 다채로움을 담고 있다. 어쩌면 색뿐만 아니라 눈빛도, 감정도, 몸짓도 그럴지 모른다. 다만 언어에 갇혀 그 미묘한 차이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지도. 아쉬운 일이다. 아마 매일 마주하는 것들의 미세한 변화에 하나하나 눈길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자연이 주는 빛과 향기,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의 작은 변화에는 관심을 갖고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해상도 높은 삶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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