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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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뒤에는, 떨고 있는 어린 동생들이 있다.
나의 앞에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던 어머니가 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지금 떨고 있는 건 두려움 때문일까, 증오 때문일까, 그리움 때문일까.
“엄마……?”
흔들리는 두 눈에 엄마의 형상을 담는 이현이 한 어절을 겨우겨우 이어 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인 어머니의 눈동자를 나도 지그지 응시하였다.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은 하늘색의 빛을 품은 눈동자를 주시했다. 그 눈동자도 나를 주시했다.
“이도헌, 이도헌! 내 목소리 들려?”
최대한 속삭이며 무전기를 통해 도헌과 대화를 인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본부에 갑자기 이준이 형이랑 쌍둥이 어머니 형상이…… 아니, 이걸 뭐라 해야 되지?”
어머니의 형상……. 그래, 모든 색을 잃고 하늘색의 빛으로 뒤덮인 저 모습이 내 어머니일 리가 없지 않나. 어머니가 아니다. 나를 향해 다정히 웃어주시던 기억 속의 그분이 아니다. 그저 우두머리의 농락이 섞인 형상…….
“아무튼 또 그 자식들 짓인 거 같은데, 어떻게 할까? 속성이라도 사용해야 하냐?”
……이기에 저런 말에 심장이 쿵 내려가는 기분이 들면 안 되는데.
인혁을 일별하자 곧바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무전을 하고 있던 인혁이 나를 보며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속성을 사용해 형상을 없애는 방법이 아니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되는 거지? 이미 새하얘진 머리는 일절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안절부절못하는 대원들과 보이지 않음에도 두려움과 놀람과 서글픔과 그리움이 섞인 떨림을 드러내고 있는 쌍둥이.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밟히는 사람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끊지 않는 연정이었다. 그리고, 반드시 형상일 뿐이어야 될 어머니까지.
지켜야 될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내 옷자락을 꼭 감싸 쥐고 있는 쌍둥이의 손에 담긴 따스한 온기가 오늘따라 힘이 되어주는 게 아닌 어깨 위에 쌓인 부담을 더욱 올려 꾹 눌렀다.
장남이잖아.
네가 맏형이잖아.
어린 동생들이 지켜보고 있어.
아버지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해.
짐이 되면 안 돼.
힘든 티를 내면 안 돼. 내색하면 안 돼.
너 안 힘들어. 더 버틸 수 있잖아. 왜 이 정도에서 무너지려 하는데. 악착같이 버텨야 돼.
먼저 떠나가신 어머니가, 마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내가-
“우리 이준이, 엄청 많이 컸네?”
그동안 그토록 간절히 멈추지 않고 올리고 또 올렸던 지게 위 나무토막들의 무게에 그것의 버팀목이 부서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한마디에 부서진 지게는 또 다른 나무토막이 되어 사방을 나뒹굴었다. 본래의 형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이후랑 이현이도 그렇고.”
내 뒤에 있던 쌍둥이가 홀린 듯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쩜, 누굴 닮아서 이리도 예쁠까.”
한 명 한 명에게로 천천히 시선을 옮기는 어머니의 눈동자를 시작으로 하늘색의 빛이 떨쳐 나가기 시작하였다.
“우리 아가들, 잘 지내고 있었어? 아빠 말 잘 듣고 있지? 쌍둥이 어릴 때는 틈만 나면 싸웠었는데, 지금은 사이좋게 지내고 있고?”
더 많은 나무토막을, 더 무거운 무게를 실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게가 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모두 내 착각이었다.
시초의 모습을 잃은 지게에는 이미 수도 없이 다시 고친 흔적이 무성하였고, 한 걸음만 더 옮겨도 곧바로 부서질 듯 망가져 있었다.
등에 인 지게의 상태를 확인할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나도 망가져 있었다. 허물어지고 아물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너진 나를…… 이제야 인지했다.
아무리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어린 시절만을 보냈을지라도 어머니라는 존재는 결코 잊힐 수 없다. 평소에는 의식을 못할지언정 쌍둥이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기억이 뿌리 박혀 있었을 테지. 그렇기에 지금 쌍둥이의 뺨이 눈물로 적셔지는 거고.
쌍둥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어머니의 손이 내 볼을 감쌌다. 느껴져서는 안 될 굳은살 하나 없는 온기 어린 고운 손길에 눈가에 고였던 눈물이 저항 없이 툭 떨어졌다.
“엄마가 미안해, 이준아.”
나를 끌어안으시며 전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굳어지는 입에 아무런 말도 담을 수 없었고 굳어가는 몸에 아무런 행동도 선보일 수 없었다.
어머니의 키를 훌쩍 넘어버린 나를, 아니 그때 어린 시절 속 그칠 새 없이 흩날리는 눈길 속에서 떨고 있는 어린 아들을 어머니가 너무도 따뜻한 온기를 전하시며 안아주셨다.
“어린 나이에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해서, 너무 빨리 떠나버려서. 그래도 이렇게나 잘 자라줘서 고마워.”
저릿하게 아려오는 심장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소리 없는 눈물을 제어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 정말, 어머니였다. 어릴 적 준비도 없이 떠나보내버린, 아니 몇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떠나보내지 못한 나의 어머니.
“이준아, 이후야, 이현아. 앞으로도 잘할 수 있지? 지금까지도 잘해왔으니까. 늘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아주 먼 미래에 다시 만나자. 엄마가 계속 기다리고 있을게.”
당신의 팔이 나의 등을 떠나고, 당신의 온기가 나의 품에게 작별을 고하였을 때 과거에서 불어온 추억을 담은 바람에 순간 숨이 멎었음에도 당신을 붙잡지 못하였다.
아무리 팔을 뻗어 당신을 붙잡으려 한들 절대 닿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사랑해, 내 새끼들.”
허황된 한여름 밤의 꿈결처럼 우리의 앞에 나타나셨던 어머니는 그렇게 또다시 우리를, 나를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