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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Nov 24. 2022

당연한 반찬은 없다.

한국에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 생일이었다. 부모님은 언니의 생일을 맞아 서울 언니네 집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나도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가기로 했다.

스위스로 떠나기 전에는 나도 서울에서 언니와 함께 살았었다. 부모님은 적어도 분기에 한 번씩, 혹은 딸들 생일일 때면 서울에 올라오곤 하셨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이것저것 챙겨 오시곤 했다. 밭에서 수확한 것들, 닭들이 낳은 달걀, 새로 한 반찬, 혹은 김치. 그런 엄마 아빠를 서울에서 맞이하기만 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런 엄마 아빠와 함께 바리바리 싸들고 출발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은 출발 전날부터 바빴다. 아빠가 밭에서 이것저것을 따오면, 엄마는 그걸 가지고 반찬을 만들었다. 부모님의 역할분담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섬세했다. 프라이팬에 몇 가지 나물들이 차례로 볶아졌다. 느타리버섯 볶음, 고춧잎 볶음, 가지 볶음 그리고 고구마 줄기 볶음. 나물이 꽉꽉 채워진 반찬통에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이어서 겉절이 김치도 만들어졌다. 새우젓을 제외한 모든 재료는 부모님의 밭에서 나왔다. 배추도, 고춧가루도, 무도, 마늘도, 쪽파도. 나는 아빠와 함께 뒷마당에서 마늘을 까고, 쪽파를 다듬었다. 마늘 알이 너무 작아서 손이 아플 지경이었다. 고작 마늘을 까면서 투정을 부리는 내게 아빠가 말했다.

“김장할 때는 알이 이것보다 훨씬 큰 거로 할 거라 괜찮을 거야.”

“김장…? 김장은 또 언제 할 건데…?!”

아빠는 11월 중순쯤 할 거라고 했고, 나는 김장 때 한몫 단단히 거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는 식혜도 만들었다. 나는 뭐 이렇게 힘들게 이것저것 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언니 생일이니까, 언니가 좋아하는 거 해주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늘 식혜를 어렵지 않게 만들어내곤 한다. 그래서 나는 식혜가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는지도 몰랐다. 엄마가 집에서 식혜도 만드시냐고 놀라워하는 친구들의 반응을 듣기 전까지는.


아빠는 따로 모아놓은 달걀도 조심스럽게 담았다. 아빠는 닭들이 요즘 달걀을 많이 안 낳는다고 불평했다. 그렇지만 언니네 집에 가져다 줄 달걀은 충분했다. 엄마 아빠가 대신 달걀을 덜 먹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다음날 서울에 도착해서 점심으로 먹을 된장찌개 재료들, 그리고 저녁에 해먹을 (언니가 직접 고른 생일상 메뉴인) 연포탕의 재료들을 챙겼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뭐 이렇게 힘들게 다 챙겨 가. 한 끼는 나가서 먹어도 되는데.”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다.

“언니 맨날 밖에 음식만 먹고 다니는데, 엄마 아빠 올라갈 때라도 집밥 해 먹여야지. 너도 이렇게 엄마 밥 한 끼라도 더 먹고 가고.”

엄마의 눈과 손은 여전히 분주했다.


서울로 출발하는 날 아침, 부모님은 미리 적어 둔 ‘가져갈 것들 목록’을 재차 확인했다. 이것저것 챙기자 짐이 한가득이었다. 아이스박스도 가득 찼다.

“와, 뭐가 이렇게 많데. 언니는 집에서 잘 해먹지도 않더구먼.”

“너도 다음 주에 서울에서 며칠 있다 온다며, 그때 올라가서 먹을 거는 있어야지.”

부모님은 딸들의 식량을 잔뜩 챙기고는 참으로 배부른 표정을 지었다.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부모님의 뒷모습에는 그 언제보다도 든든한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언니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익숙하게 언니의 냉장고를 채우곤 점심을 준비했다. 나도 엄마 주변에서 거들었지만 엄마의 속도는 따라가기는 어려웠다. 아빠는 플라스틱 생수통을 재활용하여 쌀을 담아주었다. 햅쌀을 담은 병뚜껑에 각각 번호를 매겨 언니에게 순서를 알려주었고, 묵은쌀은 도로 상주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챙겨 놓았다. 이어서 아빠는 새로 가져온 달걀은 전에 남아있던 달걀보다 순서가 뒤로 가도록 정리를 했다.

어느덧 금방 차려진 점심 밥상에 우리는 모여 앉았다. 네 식구가 둘러앉아 먹는 올해의 첫 식사였다. 마음이 된장찌개만큼이나 따뜻해졌다. 식사 후에는, 운전을 하느라 피곤한 아빠는 낮잠을 자고 나는 엄마와 언니랑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한가로운 오후였다.

저녁에는 언니가 먹고 싶다던 연포탕이 차려졌다. 전날부터 부모님이 열심히 준비한 밥상이었다. 겉절이와 나물들 그리고 연포탕에 들어가는 밭에서 수확한 야채들까지.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이 없었다. 입 안에 퍼지는 너무나 싱싱한 채소들과 들기름의 향긋함이 부모님의 노고를 계속해서 떠올리게 했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먹어왔던 엄마 반찬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사랑이었다.

후식으로는 호두 피칸 파이를 놓고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다. 더 이상 차 한잔도 먹지 못할 만큼 우리는 많이도 먹었다.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상주로 돌아가는 길. 언니와 함께 서울 집에 남아서 부모님을 배웅해야 할 것 같은데 부모님이랑 함께 떠나니 이상했다. 엄마가 언니에게 말했다.

“나물이랑 식혜는 웬만하면 빨리 먹는 게 좋아.”

아빠도 한 마디 했다.

“엄마가 힘들게 만들어 온 거는 버리지 말어.”

나도 한마디, 아니 몇 마디 거들었다.

“그래 언니! 엄마가 어제 언니 준다고 다 힘들게 만든 거야. 그러니까 버리지 말고 다 먹어. 버섯이랑 가지를 먼저 먹고, 고구마 줄기랑 고춧잎은 천천히 먹어도 돼. 그리고 아빠가 언니 달걀 준다고 챙겨주느라, 상주에서 나는 달걀도 못 먹었어. 그러니까 상하기 전에 다 먹어. 전에 갖다 준 달걀은 도대체 언제쩍건데 아직도 안 먹었데? 식혜도, 만들기 어려운 거 알지? 밥풀까지 남기지 말고 싹 다 먹어야 해.”

나는 어느덧 잔소리꾼이 되어 있었다. 언니의 대답을 기어코 듣고는 집을 나섰다.


상주 집에는 수확철을 앞둔 밭작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뭘 하고, 내일은 뭘 하고 하는 부모님의 대화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뒷좌석에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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