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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정원사 안나 Jun 21. 2020

직장생활을 수능으로 치자면  언어영역이다

A를 A로 전하는 것의 어려움

직장생활은 언어영역이다

회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업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회의에서 정리된 내용을 보고하고, 상사가 의사 결정을 내리면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업무가 진행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게 된다. 일의 본질이 엔지니어링이건, 마케팅이건, 디자인이건 간에 실제 작업을 하는 전문가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장인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업무를 정리하고, 보고하고, 지시를 받고, 다시 전달하는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아무리 주어진 일을 잘하더라도 본인이 한 것을 상사에게 잘 보고하지 못하거나 상부의 지시사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회사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뛰어난 기술이 없더라도 여러 자료를 통해 시장을 잘 조사하고 (읽기), 회의에서 진행되는 사항을 잘 이해하고 (듣기), 정리한 내용을 보고서로 잘 만들고 (쓰기), 상사에게 적시적소에 잘 전달하면 (말하기) 회사에서는 A+ 인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음...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니 직장생활에서 승진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들이 '언어영역'의 카테고리 안에 모두 들어가는 것 아닌가.




다시 발견되는 언어영역의 어려움

십여 년 전 졸업을 앞두고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넣을 때 회사마다 빠지지 않고 인재상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 우수한 직원을 찾는다고 되어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한국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무슨 '커뮤니케이션 능력 씩'이나 필요해? 그때까지 내가 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는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모여 앉아서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절반만 완성된 문장으로 된 (나머지 절반은 눈빛으로 완성) 가족과의 대화가 전부였다. 사회생활이 전무한 무지한 대학생에게 커뮤니케이션이란 자고로 대화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이었다.


나에게 커뮤니케이션이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이었다.
Photo by Austin Pacheco on Unsplash


그런데 직장생활을 10년쯤 하고 나니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놀랍게도 직장생활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내가 의도하는 바가 그대로 전달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아래와 같은 상황에 대해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임원이 팀장 회의에서 A를 설명한다. 팀장들이 각 팀에 돌아가서 B, C, D, E로 전달한다.

A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 B에 대한 질문을 한다.

A가 A인 이유에 대해서 30분 동안 설명한다 → 한 시간 뒤에 왜 A 인지 모르겠다고 다시 돌아온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왜 회사에서 의사전달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평상시 친구들과 대화할 때면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편이었다. 흥미진진하게 도입부를 이끌고 가서 클라이맥스에서 빵 터뜨릴 때의 즐거움은 나와 듣는 사람 모두의 몫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그런 화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대화를 할 때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와 업무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한다. 

보통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기승전결의 구도를 기본으로 한다. 듣는 사람들이 충분히 이야기에 몰입할 준비가 되어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탁구공을 주고받듯이 빠르게 정보 전달이 되어야 하는 업무 상황에서는 말이 길어지면 듣는 사람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리고 결론이 무엇인지 스스로 유추하려고 하게 된다.



차이니즈 위스퍼 (CHINESE WHISPER)

오래전에 가족오락관이라는 아주 유명한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서 인기 있었던 게임 중 하나가 제시된 문장을 보고 옆사람에게 귓속말로 전달해서 마지막 사람이 어떤 문장이었는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겨우 한 문장일 뿐이었는데 대여섯 사람을 거쳐서 마지막 사람이 외치는 것은 최초의 제시된 것과 완전 다른 엉뚱한 말이었다. 시청자들은 깔깔대며 웃었지만 이런 일은 생활 도처에서 일어난다.

내가 전달한 내용을 상대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일, 
상대방이 말한 것을 내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난다.    
출처 - www.thelogicalimagination


바보의 벽

일본에서 유명한 요로 다케시는 그의 베스트셀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뇌에는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차단하는 바보의 벽이 있다'. 의도적이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싶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정보를 지워버리거나 혹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끼워 맞춰서 해석한다. 그래서 A라고 알려줘도 A-1, A-2로 왜곡시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보려면', 뇌의 예측과 입력되는 데이터가 일치해야 한다.
-인코그니션-  


여기서 세상을 '보려 한다', '의식한다'는 말은 있는 '있는 그대로 인지한다'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자면 뇌는 처리해야 할 정보의 양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하여 항상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개념을 기반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만약, 기존에 일치하는 개념이 없다면 그 사실은 '입력되지' 않거나 기존 개념과 비슷한 것으로 왜곡시켜서 받아들인다. 이것이 A에 대해서 말했을 때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돌아가게 되는 이유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기. 짧게 이야기하기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가? 보통 왜곡은 대화 중에 던져지는 작은 단서들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빠르게 결론을 말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들은 단서를 기반으로 자기만의 연결고리로 생각을 전개시킬 것이다. 그리고 말이 길어질수록 연결고리를 가진 단서들이 많이 나오고 그를 통해서 자신만의 결론으로 도달할 확률이 더 커진다. 따라서 왜곡 없이 나의 말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결론을 가장 앞에 두고 최대한 말을 짧게 해야 한다.

Photo by Jamie Templeton on Unsplash


역피라미드식 대화

결론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일반적인 대화 방식과 상당히 다르다. 말을 하면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버는 것도 불가능하고, 상대가 무언가 받아들일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아 공손하지 못한 것만 같다. 역피라미드식으로 대화를 하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서 스스로 충분히 정리가 된 상태에서 전할 때만 가능하다. 그것은 상대의 시간을 절약시켜주는 것이기에 오히려 상대방을 가장 많이 배려한 대화법이기도 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때도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것은 언어영역이었다. 나의 생각을 배제하고 상대의 의도를 최대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큼이나 상대방이 상상의 나래를 펴지 않도록 최대한 간결하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그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는 반증이다. 회사생활에서 소통이 어려웠던 것은 내가 회사식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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