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통화를 했다. 옆방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시시콜콜 다 들릴만큼 작은 집도 아니었고, 특별히 비밀얘기는 하는게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연애하는 아들의, 동생의 목소리를 가족들에게 들키는게 싫었다. 쑥쓰러웠다. 지이와 사귈때의 얘기다.
지이의 목소리는 조용한 밤에 뒤집어쓴 이불 속에서 동그란 조약돌 모양의 아이폰을 통해 듣기에 딱 좋았다. 소리와 공기가 적절히 섞여서 서로 끌고 당기는, 맑지만 가볍지는 않으며 지적이면서도 명랑함을 놓지 않은, 주로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인디밴드의 보컬같은 목소리였다.
자주 짓는 표정이 얼굴에 켜켜이 흔적을 남기면 한 사람의 인상이 만들어지듯이, 사람의 목소리에도 상(象)이 있다. 조급하고 바쁘기보다는 차분하고 안정적인, 그렇다고 해서 호수처럼 잔잔해서 지루하기보다는 바다처럼 물결치고 높고 낮음이 있는 목소리가 좋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꺄아, 하고 소리칠 줄도 아는. 슬플 때는 울먹임에 잠겨서 한없이 촉촉해지는. 지이는 그런 목소리를 가졌다.
그 목소리를 듣는게 참 좋았다. 연애 초기에 우리는 늘 붙어있지는 않았다. 매주 토요일 데이트, 그리고 종종 평일 저녁 데이트 한 번. 평균적으로 주 1.5회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거의 매일 통화를 했다. 참 할 얘기가 많았다. 조용한 밤에 그 목소리를 듣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오기도 했다.
주말 부부가 된 후, 마치 연애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아내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아내의 목소리는 그때와 똑같다. 전혀 나이들지 않았다. (심지어 얼굴도 그대로다. 뱀파이어인가.) 그래, 전화기로 전달되는 목소리는 이런 느낌이었지.
오늘밤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내와 통화를 해봐야겠다. 오롯이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커플북] 주말 부부는 그뭐냐, 그거다. 제주편 - 아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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