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감기 기운 있는 거 아니야? 목이 잠겼네. 목이 쉰 것 같아. 목소리가 달라졌어. 왜 이리 신났어? 목소리 톤이 날아다니네. 목소리가 커서. 신난 목소리인데? 왜 말이 없어. 무슨 생각하는데? 대답이 없네. 내 말 듣고 있지? 재밌는 이야기 해줘. 노래 하나 해줘.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안 좋네.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 보여서.
이제 영상 통화는 별스럽지 않은 일상의 소통 방식이 된 시대를 살고 있지만, 먼 곳에 두고 온 애틋한 사람을 촘촘히 살피기에는 여전히 소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정확한 듯싶다. 주말 부부로 산 이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더욱 자주, 그리고 자세히 살핀다.
그는 아이 같다. 언제나 목소리에 선명한 마음을 심어두고는 감추지 못해 늘 내게 들킨다. 특히 대화하다 즐거워지면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목소리의 볼륨이 높아진다. 신났냐고, 갑자기 크게 얘기한다고 하면 ‘내가 그랬어?’라고 꼭 되묻는데, 그 말을 할 때의 목소리는 더 크다.
그와 연애할 때 영상통화는 정말이지 sf 영화에서나 소품으로 나오는 정말 먼 미래의 발명품 같았다. 유성처럼 쏟아지는 말을 전하고 싶은 밤이 되면, 서랍 맨 밑에 감춰둔 작은 전화기를 꺼내 꽂아서 통화를 했다. 집에 굴러다니던 걸 하나 챙겨서 숨겨뒀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닥거리다 그대로 잠들어 전화기를 안고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렇게 완전 범죄를 꿈꿨지만, 몇 차례의 밤샘 통화는 긴 꼬리가 되어 세게 밟히고 말았다. 집 전화비가 말도 안 되게 많이 나온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오류라 생각하신 부모님께서 전화국에 따지러 가셔서는, 한 묶음의 종이를 받아들고 집에 오셨다. 노란색 형광펜으로 군데군데 밑줄 그어진 그 종이는 통화 목록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 번호. 나는 익숙했고, 부모님은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번호였다.
“그거 나야. 엄마.”
증거가 명확하니 발뺌할 생각도 없이 자백했고, 미스터리가 맥없이 풀린 것에 당황한 두 분은 잠시 마주 보시더니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가셨다. ‘너무 많이 하진 말고.’라는 말씀을 너무 작게 하셔서 들릴락 말락 했다. 엄마와 아빠는 기질상 로맨티스트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딸의 연애 사업에 호황기가 온 것임을 직감하셨던 것 같다.
밤새 들어도 또 듣고 싶었던 그 목소리를 곁에 두고 산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믿고 곱씹고, 거기에 내 목소리를 얹고 섞고 흔들며 산다. 많은 것을 이야기로 풀고 묶기에, 우리들의 뱉는 말을 뒤집어 보면 비슷한 지문을 갖고 있다. 주고 받는 말을 사이에 둔 채, 서로의 메아리가 되어 가나 싶다. 서로에게 깊은 울림이 되어, 오랫동안 나란히 걷고 싶은 마음으로. 그 마음으로 산다.
[커플북] 주말부부는 그 뭐냐, 그거다. 서울 편 - 남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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