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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 위 취준생 Nov 15. 2019

詩:界_시계(2) '우리가 길을 걷는 이유'

침대 위 취준생의 시 모음집

우리가 길을 걷는 이유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는 등산을 좋아하셔서 나와 동생을 자주 데리고 가셨다. 움직이기를 좋아하여 곧잘 산을 오르던 동생과 달리 나는 오르막길을 오를 때 차오르는 숨으로 답답해지는 가슴의 통증과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정상이 싫어 등산이 너무나도 싫었다. 힘이 들어 잠시 쉬려고 앉은 커다랗고 평평한 돌에는 개미와 이름 모를 벌레들까지 있어 쉴 수도 없어져 쉼 없이 올라가야 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어찌나 힘이 넘치셨는지 내가 조금이라도 멈출 기미가 보이면 억지로 끌고 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등산을, 아니 정확히는 걷는 것을 싫어했지 싶다.


 대학생이 되어 집을 나와서 살 무렵에도 가끔 고향에 가면 하버지께서는 어김없이 집 앞에 있는 산에 오르자고 하셨다.(아버지께서는 산이 아니라 가벼운 산책로가 있는 언덕이라고 하셨지만 내게는 분명 산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부러 자는 척을 하거나 늦장을 부리며 가기 싫은 티를 내었다. 그럼 아버지께서는 나를 두고 혼자서라도 산을 다녀오시곤 했다. 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나이를 더 먹고 27살이 된 나는 여전히 등산을 싫어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일까 가끔은 걷고 싶을 때가 생기기 시작했다. 잠깐 걷는 것조차 싫어했던 내가 '걷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찌뿌둥하거나 문득 날이 좋아서거나. 대부분은 머리가 복잡할 때. 고향에서 떨어져서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취직은 언제쯤 할 수 있는가, 과연 내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수많은 고민이 나에게 질문을 해오는데 아직도 그 답을 모르기에 무작정 밖을 나와 길을 걸으며 '나'를 정리하곤 한다.


 요즘은 고향에 가도 아버지께서 산을 오르자고 하시지 않는다. 대신 낚시를 가자고 하시는데 아마도 지금은 산을 오르실 체력이 없으셔서인가 싶다.(아니면 단순히 취미가 바뀌셨거나...) 과거에 내가 집에 오면 같이 등산하자고 하시던 이유가 혹시 내가 요즘 걷고 싶은 까닭이었을까 싶어서 가끔은 못 이기는 척 같이 집을 나선다. 낚싯대를 두고 가만히 앉아 멀리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버지께선 대뜸 요즘은 뭐 하고 지내는지, 하는 공부는 있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시곤 무엇을 하건 응원하고 잘 해내리라 믿는다고 하신다. 그렇게 내가 가진 걱정들을 이미 알고 계신 듯 무덤덤하게 말씀하셨다.


 '믿는다.'

 짧지만 부담스러울 수 있는 문장이었건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나에게 굉장한 힘이 되었다.


 어쩌면 내가 어렸을 때 산을 오르셨던 아버지께서도 복잡한 마음을 가지셨을까? 단순히 산을 오르셨다기보다 인생이라는 길을 걸으면서 생기는 고민을 정리하고자 산을 오르셨던 것이 아닐까?


 이번 연말에는 아버지께 가서 오랜만에 산(여전히 내게는 언덕이 아니라 산이다.)을 오르자고 해봐야겠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을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들어 드릴 수 있기에. 주말 어느 날이 좋은 아침, 아버지께 같이 산을 오르자고 해야겠다. 정상에서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당신은 나보다 먼저 그리고 오래 길을 걸어오셨으니, 나는 잘 걷고 있는지 여쭤봐야겠다.


갈림길


걷던 길이 갈라졌다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길이나 저 길이나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

걱정하여 주저앉아

제자리에 있을 바에

어느 길이든 걸어가자.


방황


가만히 있다고

방황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네 생각이 죽어

무의미한 하루가 계속된다면


"당신은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여정

2019.10.13 김해 르네시떼역에서 공원으로 가는 길

내가 길을 벗어나 걷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

길을 잃고 방황하여 헤매는 것이리라.


허나 나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고

나의 길을 찾으러 떠난 것일 뿐이다.


"나의 여정(旅程)은 내 삶을 위한 여정(勵精)이었다."


지나가다

2019.10.08 김해 어딘가 산책로 작은 다리 위

홀로 떠나는 여행

기나 긴 도로 옆을 커다란 배낭을 메고

터벅이며 걸어간다.


휘익- 하고 바로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멈출 생각을 않는다.


동요하지 말자.

혼자 걷는 길이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고

저 멀리 차를 타면 놓칠

풍경들을 보며 다시 걷자.


"지나간 차들은 그저 당신과 목적지가 달랐을 뿐이다."


언젠가는 당신과 목적지가 같은 차를 탄 사람이

당신이 손 흔들었을 때

짐을 들어 뒷자리에 실어주며

당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즐거워할 테니.


"지금은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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