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골 마을 실버타운 1층에 스코티시 폴드가 할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접힌 귀와 둥글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폴드는 할머니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였어요.
폴드는 늘 할머니 품에서 가르릉거리며, 편하고 깊은 사랑을 느꼈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오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어요.
볼일을 보러 외출하던 할머니가 창문을 열어둔 걸 깜빡하고 나가신 거예요.
“바깥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 많은 폴드는 밖을 내다보려고 폴짝 뛰어 창틀에 올라갔죠.
그리고, 살짝 뛰어내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 밖 세상에 발을 내디뎠어요.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온 폴드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마침내 마을의 끝자락에 다다랐답니다.
그곳엔 오래된 폐공장이 있었어요.
녹슨 철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마당엔 키 큰 풀들이 가득했지요.
폴드는 처음 맡아보는 신기한 냄새를 따라 공장 안으로 조심조심 들어갔어요.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야, 고양이다!”
“진짜 귀엽게 생겼네!”
낡은 공장을 자기들 놀이터처럼 드나들던 장난꾸러기 형제였어요.
형제는 폴드를 잡으려 냅다 뛰어왔어요.
작고 통통한 폴드는 형제에게 움직이는 장난감 같았거든요.
낯선 손길이 다가오자, 폴드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작은 발톱을 세웠어요.
그리고 덩치가 작은 아이가 손을 뻗자, 앞발을 휘둘렀지요.
동생의 손등에 금세 붉은 줄이 생겼어요.
“으앙! 피 난다!”
동생이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어요.
“못된 고양이네! 혼내 주자!”
형이 쓰레기 더미에서 녹색 노끈을 주워 왔어요.
형은 폴드를 잡아 노끈을 폴드의 목에 둘둘 감고, 반대쪽 끈을 기둥에 묶었어요.
그리고 가느다란 막대기로 폴드의 몸 이곳저곳을 쿡쿡 찔렀죠.
공장에는 형제의 웃음소리와 폴드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퍼졌어요.
해가 지면서 공장 안이 어둑어둑해졌어요.
“형! 이제 집에 가자. 엄마한테 혼나겠다.”
동생의 말에 형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런데 형! 저 고양이 어쩌지? 풀어 줄까?”
동생이 묻자, 형은 폴드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저었어요.
“아냐! 재밌는데… 내일 와서 또 놀자!”
“추울 텐데…?”
“안 추워. 털이 저렇게 많은데 뭐.”
“배고플 텐데….”
형이 잠깐 생각하더니 툭 내뱉었어요.
“하루쯤 굶어도 안 죽어. 우리도 엄마가 집 나갔을 때 며칠씩 굶었잖아?”
형제는 그렇게 조잘대며 밖으로 나갔어요.
형제의 말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혼자 남겨진 폴드는 두려움에 떨었어요.
사방이 깜깜해졌어요.
폴드는 춥고 배고프고, 점점 더 무서웠어요.
도망치려고 발버둥칠 때마다 기름이 고인 바닥 위에서 자꾸 미끄러졌어요.
“야옹~ 냐~~옹”
“냐아… 켁! 크윽…”
“캬앙!!”
폴드는 애타게 울었어요.
하지만 그 울음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죠.
그때— 스스슥~ 찌익!
공장 안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 울렸어요.
바람에 날린 비닐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였지만, 폴드의 귀엔 마치 괴물의 숨소리처럼 들렸어요.
폴드는 몸부림치며 도망치려 했어요.
하지만 몸부림치면 칠수록 목에 감긴 노끈은 점점 더 세게 조여졌죠.
“냐아… 켁… 크윽…”
폴드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지고, 마침내 작은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쏠과 넬이 도착했어요.
둘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폴드의 영혼에게 다가갔어요.
쏠이 폴드의 영혼을 살며시 끌어안았고, 넬도 떨리는 발을 잡아주었죠.
“무서웠지? 안전한 쉼터로 데려다 줄게.”
둘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폴드의 영혼을 쉼터로 안내했어요.
쉼터에 도착해 2층에 올라가자, 폴드의 영혼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어요.
폴드는 드디어 두려움과 슬픔에서 벗어나 편히 쉴 수 있었답니다.
쏠과 넬은 폴드의 옆에 앉아 오래도록 폴드의 등을 쓰다듬어줬어요.
다음 날 아침, 폴드가 1층 카페로 내려와 쏠과 넬 옆에 앉았어요
잠시 후 아이리스가 따뜻한 참치죽 한 그릇을 들고 왔어요.
“아이고, 가여운 것… 무지개다리를 건너 평안을 찾길 바란다,”
그녀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폴드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아이리스를 바라 보았어요.
“할머니가 걱정돼요. 날 찾고 계실 텐데… 이렇게 된 걸 보시면 마음이 찢어질 거예요.”
아이리스가 살며시 폴드의 등을 토닥였어요.
“이리 와봐. 같이 한 번 보자꾸나.”
아이리스가 폴드를 데리고 메아리 거울 앞으로 걸어갔고, 쏠과 넬도 조용히 뒤따랐어요.
그녀가 거울 표면을 살며시 쓰다듬자, 거울이 부드럽게 빛나며 깨어났어요.
거울 속에는 폴드가 살던 집 앞에 죽은 폴드를 안고 있는 형제가 보였죠.
형은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고, 동생의 얼굴엔 눈물이 줄줄 흘렀어요.
아이리스가 조용히 설명했어요.
“오늘 아침에 형제가 공장에서 너를 발견했단다. 그리고 네 할머니가 밤새 붙여 놓은 전단지도 봤지. 저 애들도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야.”
거울 속에서 할머니가 문을 열었어요.
처음에 그녀의 얼굴엔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지만, 서서히 표정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두 팔을 활짝 벌려 형제를 꼭 안아주었어요.
잠시 후, 쉼터 2층 발코니에 무지개다리가 떠올랐어요.
폴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살금살금 다리를 건넜어요.
쏠과 넬, 그리고 아이리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돌아섰어요.
셋의 발걸음도 한층 가벼워져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