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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3. 2022

그래서, 상황 속에 자신을 던져 놓겠다고?

디즈니 스파크 쇼츠 <토끼굴>을 보고

주연 토끼는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집을 짓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떤 곳에 가면 너무나 오지랖이 많은 주변인이 살고, 또 다른 곳은 무서운 동물의 옆이다. 스스로 어떻게든 집을 지어보고 싶은 토끼는 다른 존재들과 만나지 않기위해 깊이 땅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결국 지하수를 건드려 굴 전체가 물에 잠길 뻔한 사고도 친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토끼는 아까 만났던 무서운 동물에게 찾아가 도움을 구한다. 자신이 집을 짓기에 ‘방해가 되던’ 존재들과 함께 홍수가 날 위기를 해결할뿐더러, 자신이 원하던 집보다 훨씬 근사한 공간을 마련하게 되고 마무리된다.




어떤 공간을 갖기 위해서는 (너무 뻔하지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스스로 구한다

2.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


‘타인의 도움을 받았더니 혼자의 힘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정도의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이상을 그리는 많은 이야기들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더 멀리 성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일들도 타인 덕분에 진행 할 수 있다. 혼자 고립되어 연구하는 연구자들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새해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영향을 받고, 스스로의 힘이 길러지지 못한다면 상황을 바꾸어 노출시키'라는 이야기도 한다. 맹자의 엄마부터 재택근무를 하는 2022년 우리들까지, 외부의 영향이 주는 ‘긍정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왔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나도 모르게 내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내가 잘 되던 잘 되지 않던 그 모든 원인을 바깥에서 찾았다. 내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운명과 우연에 기뻐했고, 나도 모르게 갖추어진 나만의 능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수많은 인생의 실패자들은 ‘독불장군’이고 ‘고집스러웠’기 때문에 낙오했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접했다. 영화 속 많은 주인공들은 자신의 아집을 버리지 못해 실패했고, 멘토를 만나 해결했다. 정말 많이 들었다. 게다가, ‘스스로를 검열하는 데에 익숙’한 나머지,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우월감도 갖고 있었다. 세상이 원하는 인재가 되고자 했던 나는 ‘충분히 외부와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멋진 존재가 되기 위해 타인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 곳에도 그림자가 있었다. 무의식 속에 얕고 넓게 깔린 그림자, 모든 책임과 선택, 평가와 목적이 타인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나에게 ‘안심’을 주는 사람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롤모델이 없어지고 나서야, 나에게 가이드를 주던 사람이 '너 스스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할 때 서야조금씩 귀가 열렸다. 아무도 구해주는 사람이 없고 ‘스스로를 구하려고 해야’ 카톡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눈이 뜨였다. 상황에 백날 자기 자신을 던져놓아도 소용없고, 결국 스스로 바뀌고자 해야 한다는 어느 부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한번 머리가 열렸다. 혼자 해야 한다는 것, 온전히 나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와야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 그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을 때, 그때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실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내 손에는 아무런 실력이 없다는 것도 알아챘다. 스스로 구하려고 해야 했다. 나 역시도 (아닌 줄 알았지만)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인생에 대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하면 언젠가 구원자가 나타나겠지, 하는 기대가 무의식에 깊게 깔려있었다. 하지만 그 무의식을 깨부수고, 실력이 없는 자신을 위해 하나씩 ‘기억’하고 ‘습득’ 해야했다. 내 인생을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는 '지금의 나' 였다. 과거의 쾌쾌한 냄새가 지독하지만, 그 냄새를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지금 이 찰나를 보내고 있는 나'였다. 나는 타인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아야 했다. 지금 당장 말이다. 


영상 속 토끼는, 다른 곳에서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스스로의 손으로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으면, 평생 뚫어뻥을 어디서 사서 집안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조차 모를 수 있다. 스스로 막힌 변기는 내 손으로 뚫어야 하는 것처럼, 내 인생도 공간도 내 손으로 만들려고 움직여야 한다. 


+) 이어폰도 핸드폰 배터리도 다 닳았을 때, 내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노래 가사를 기억해서 내 입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노래를 배우러 가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 생각이 왜 거기서 그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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