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유럽 돌바닥에서의 기록 0

프롤로그- 도망치듯이 떠나온 그 곳에서 나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다.

by 릴리코이

그날,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 이태원에서 만나 칵테일 한잔씩 하고 백 년 만에 클럽을 가기로 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고, 나는 누구보다도 잉여롭지만 그럭저럭 살만하다고, 너는 어떻게 그렇게 피부가 좋냐고, 살이 왜 그렇게 빠졌냐며 너 부러지겠다 등의 말을 내뱉은 후, 속으로

'저 계집애는 어떻게 앞머리가 어중간한 거지 존인데도 저렇게 예쁘지..'

라며 그날 그렇게도 꾸민 나 스스로가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그리곤 함께 찍은 셀카 속에서 그 예쁜 동기들과 내 얼굴크기를 비교하며 절망했지만 그들에게는 절대로 티 내지 않던 나였다.


너는 이제 뭐하려고?



청춘들에겐 요 근래 가장 많이 듣는, 그럼에도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그리고 가장 피하고 싶은 질문일 것이다. 그것이 어른이든, 또래든.

나 역시 그렇다 할 대학 졸업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예술을 전공했기에 당연히(?) 백수였다. 평생을 이렇게 살 것을 각오하고 살아온 마음 편한 백수..........(거짓말..)


하지만 그날 나는 그 질문을 당당히 할 말이 있었다. 내 대답은 "나 유럽에 갈 거야!"

그리곤 1초 만에 날아오는 질문공세에 나는 답했다.

"한 달 정도. 한 곳을 정해서 거기서만 머물 거야."

"음, 스페인이나 체코 가려고. 근데 스페인 갈 확률이 높아! 체코는 좀 더 추울 것 같아."

"날씨가 제일 중요해! 기타 들고 가서 파란 들판에 앉아서 띵가띵가 곡 쓰는 베짱이 하러 가는 거거든."

"돈? 그동안 계약직 선생 노릇 하며 벌어놓은 돈 다 쓰고 오려고. 젊어서 번 돈은 다 써야 된 다했어."

"아마 2주 뒤에는 떠날 거야. 그냥 숙소랑 비행기 티켓만 잡고 갈 거거든."


클럽으로 향하는 길 우리는 이제 2000년생들도 클럽에 들어올 수 있다는 뒷목 잡는 이야기를 지껄이며 새삼 우리의 나이를 체감하고,

아니다, 아니다. 우리는 아직 젊다! 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리곤 클럽에 갔더니.. 오 마이 갓 언제 와도 익숙지 않은 너무 많은 사람, 클럽 전체를 가득 메우는 담배연기, 술냄새, 땀냄새. 우웩.

이제는 못 놀겠다. 우리 늙었나 봐 를 연신 내뱉으며 결국 새벽 5시, 이태원 역 바로 앞 할리스커피에서 조각 케이크로 해장하며 우리 1년에 한 번 이상은 절대 못 놀겠다 내년에 다시 보자. 며 의지를 다지고 첫차에 올랐다.


오랜만에 밤을 새 가며 술을 들이켠 탓에 온몸이 지구를 떠안은 것처럼 무거웠지만, 머리카락에 밴 담배냄새를 도저히 모른 체할 수 없었기에 눈을 거의 감은 체로 벅벅벅 정성스레 샤워를 하고 황급히 침대에 누웠다.

잠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잠귀가 밝은 나는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 몸은 절대 일어날 리가 없기에 정신아 얼른 다시 자자.. 하고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 아무리 잠에 들려해도 이 소란스러움이 너무 익숙지가 않아 이상함, 짜증남을 표정에 가득 구겨 넣고, 천근만근 몸을 질질 끌고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신발장 옆 소파에 걸쳐 앉아 심장에 손을 얹고 눈을 감고 숨을 헐떡이는 아빠,

그 앞에서 핸드폰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거실을 뱅뱅 돌아다니며 사색이 된 엄마.

"왜 그래?"

내가 물었다.

"아빠가 심장이 아프데. 숨이 안 쉬어진데. 119 불렀는데 왜 이렇게 안 오지?"

엄마는 거의 울면서 대답했다.

그럴 만도. 아빠는 내가 23년 살면서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만 큰 수술을 3번 넘게 해 오고 늘 간이침대는 아빠 자리였다. 그런데 그런 아빠의 처음 보는 표정이 갑자기 너무나 큰 공포로 다가왔다.

정신을 차린 후 엄마를 진정시키고, 119 대원들이 오셨을 때 먼저가라고 나는 필요한 짐을 챙기고 따라가겠다 했다. 아직도 귀에 클럽에서 듣던 웅웅 음악소리가 아른거리는데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상황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나는 금방 필요한 옷가지와 아빠의 옷, 카드 등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 아빠는 큰 수술을 했다. 식도가 터졌고, 그 피가 폐에 전부 퍼져서 긴급수술을 안 하면 몇 시간 내로 생명이 위험하다 했다. 예상 3시간이었던 수술시간이 훌쩍 뛰어 5시간이 지나서야 아빠가 나왔다. 수술실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드라마 영화에서나 보던 배우들처럼 미친 듯이 울었던 나는 아빠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수술이 잘 되었다고 듣는 순간, 내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오늘까지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할 만큼 세상에 모든 감사를 느꼈다. 아빠는 중환자실로 곧바로 옮겨졌고, 곧 의식이 들고 회복이 조금 되면 일반병실로 옮겨야 하는데, 간병할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할게. 엄마 일해야지."

언니는 미국에 있고 엄마는 일 가야 하고, 나는 백수니까. 나밖에 없잖아.

그 말을 할 때 유럽? 전혀 내 머릿속에 없었다. 당연히. 나는 아빠 곁에서 아빠를 간호해야 한다.


도라에몽같이 퉁퉁 불어버린 아빠의 손


그렇게 2주가 흐르고, 아빠는 퇴원을 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잠귀가 밝은 나는 6인실에서 아저씨들의 탱크 소리 같은 코골이에 절대 잘 수 없었다. 매일 30분씩 끊어자던 생활이 드디어 끝났다니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아빠는 몇 달 내내 수술 부위인 식도가 아물 때까지 죽을 먹어야 했다. 나는 매일매일 죽을 끓이고, 분리수거를 하고, 청소를 하고, 퇴근한 엄마 먹을 밥을 하고, 잠을 자고, 죽을 끓이고, 청소를 하고, 퇴근한 엄마 먹을 밥을 하고, 잠을 잤다. 2달을.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나를 덮쳐왔다.

웃음도, 울음도, 화남도, 기쁨도 그 어떤 것도 나를 채우지 않았다. 그야말로 나는 텅 비었다.

아빠를 간호하며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가 좋아서 했고 하루하루 나아지는 아빠를 보며 이유모를 승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무기력감과 우울감에 머리가 무거워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왜 내가 이런 건지도 찾지 못했다.

아빠도 잘 회복하고 있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잖아. 근데 난 왜 이런 거야?


"엄마, 나 없이 아빠랑 엄마 괜찮을까..?"


이유모를 죄책감에 몇 날 며칠을 시달리다 뱉은 한마디였다.

나는 단지 숨을 쉬고 싶었다. 내가 스스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아닌, 남에게 기생하는 것 같은 생활이 내겐 너무나 버거웠다.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 만 같았다.

그저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가 사는 집의 공동체, 누군가의 도우미, 누군가의 무언가.

사실 알고 있다. 이기적이라는 것.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몇 년을 가족 곁에서 병시중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신은 너무 엄살이 아닙니까 라고. 맞다. 백 퍼센트 인정한다. 나는 그렇게나 나약하고, 이기적이며, 한심한 인간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는 너무나 너무나 지친 나는,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니, 벗어나야 살 것 같다. 내 존재의 가치가 없음을 서서히 다 알아갈 때쯤엔 아마 나는 죽을 것 같을 거야. 안개처럼 내 몸이 사라질 거야.


"어디 가려고?"

엄마는 애써 담담한 척 말했다.

"나.. 나.... 포르투갈 못 갔던거..가고 싶어.. 아니 가야 할 것 같아.."

3초간의 무거운 적막 끝,

"그래, 갔다 와. 갔다 오면 너 잠 좀 잘 수 있겠지?"

"미안해 엄마, 고마워...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하다. 내 존재가. 나쁜 딸이라서, 나만 아는 이기적인 딸이라 미안했다. 나는 왜 이런 인간일까. 왜 난 그냥 낙천적이지 못할까. 왜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일까.


그날, 바로 3일 뒤 포르투갈로 출국 비행기표를 끊고,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했다.

어떠한 설렘도 기대도 없다. 물론 2달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쉬고 싶다. 그저 나만 오롯이 혼자이고 싶다. 그 누구와도 상관없는 나 혼자만의 삶을 살고 싶다. 내 존재가치를 알고 싶다. 내가 왜 사는지,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지 알고 싶다.


아니, 아니다.

나는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그냥 나로, 나라는 사람으로 세상에 그저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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