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속,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가족의 순간
몇 달 전, 창고 깊숙이 쌓아 두었던 앨범을 꺼내 책장 선반에 정리해 두었다. 쉽게 꺼내 볼 수 있도록 눈길 닿는 자리에 옮겨 두었을 뿐, 사진 자체를 새롭게 정리한 것은 아니었다.
앨범 속 사진들은 끈끈한 속지에 비닐로 덮여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그 자체로 시간의 흔적을 불러올 수 있는 작은 문이 된 셈이다. 두 아들의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 졸업까지의 성장 과정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인화 사진이 자취를 감췄다.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탑재되면서, 사진은 인화되지 않은 채 각자의 디지털 어딘가에 흩어져 저장되기 시작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처럼, 나는 수학여행이나 가족 행사, 학교 생활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부지런히 추억을 남겼다. 그렇게 인화해 보관한 앨범은 나의 작은 유산처럼, 일대기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결혼해 출가한 두 아들에게 정작 자신들의 앨범을 가져가라고 해도 선뜻 가져가지 않고, 여전히 집에 남아 있다. 우리 부모 세대처럼 사진이 직접 추억을 소환하는 유일한 매개는 아닌 듯하다.
얼마 전에는 앨범 속 사진 일부를 스캔해 예전부터 운영해 오던 다음 가족카페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사진 양이 너무 많아 일부만 올린 채 멈춰 있는 상태다. 정작 나조차도 카페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사진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사진도 자주 봐야 추억이 된다. 그래서 몇 개의 큰 액자를 사서 가족사진을 담았다. 큰 액자에는 가족 전체의 사진을, 작은 액자에는 아들들과 우리 부부의 사진을 나누어 거실과 방 책장에 적절히 배치했다. 이렇게 액자를 걸어 두니 수시로 사진을 마주할 때마다 추억이 살아나는 듯했다.
그러던 중, 사진 하나를 더 액자에 담으려다 부식 창고 서랍에서 쓰지 않던 소형 액자를 발견했다. 이전에도 본 기억이 어렴풋이 있었는데, 오늘은 사진을 넣기 위해 뒷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기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클린 코리아! 실천하는 아름다움, 폐기물부담금
이 액자는 스티로폼을 활용하여 만든 제품입니다. 한국환경자원공사
순간, 오래전 한국에서 이민 올 때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구를 보니 아마도 비매품으로 제작된 공익 홍보물 같았다. ‘한국환경자원공사’는 2004년에 ‘한국환경공단’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니, 그 이후로만 따져도 이미 20년 이상 된 액자였다.
놀라운 건, 폐자재를 활용해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액자의 외형이 나무 액자와 흡사했다는 점이다. 그 속에 아들 형제의 어린 시절 사진을 넣으니, 마치 잊혔던 액자가 다시 제 역할을 찾은 듯 특별한 의미가 되살아났다.
요즘은 값싼 액자들이 넘쳐나지만, 정작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담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디지털 기기 속에 갇혀 홀로 보는 사진보다, 액자에 걸려 늘 눈길을 주고받는 사진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버려지지 않고 다시 활용된 액자 속에서, 아들 형제의 웃음이 더욱 값져 보였다.
세월의 길 위에서 뜻밖에 다시 마주한 작은 액자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삶이 걸어온 길과 그 속의 기억을 다시 만나게 해 주는 동행 같았다. ‘그 길 위에서 만남 오늘’이라는 말처럼, 나의 길 위에서 다시 소환된 추억은 현재의 하루를 따뜻하게 밝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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