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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경 Oct 30. 2022

파도를 잡기 위한 싸움, 피크 경쟁

거친 파도를 뚫고 돌아온 라인업에서 한 숨 잘 골랐으면이제 본 게임이 시작된다라인업에 밀려오는 파도를 타기 위해 전후좌우에 떠있는 다른 서퍼들과 경쟁해야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로지 라인업에 다다르기 위해 서핑을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 서핑을 한 것인 이상 우리는 경쟁이라는 큰 산을 넘지 않을 수 없다. 




서퍼들이 파도를 기다리는 라인업에서 피크는 파도가 거품이 되어 부서지기 시작하는 한 지점이다밀려오는 파도 하나를, 해수면을 밑변으로 하고 파도가 하늘을 향해 가장 높이 솟아올라있는 지점을 꼭짓점으로 하는 하나의 삼각형이라고 보았을 때, 꼭짓점에 해당하는 것이 피크이다. 피크는 한 파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지점이고, 피크에서 시작하여 해수면까지 이어지는 삼각형의 변에 해당하는 선을 따라 순차적으로 밀려오던 파도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거품의 형태로 변한다. 


서퍼는 삼각형에서 피크에 해당하는 꼭짓점부터 시작하여 파도의 모양에 따라혹은 자신의 편의에 따라 왼쪽 또는 오른쪽 변을 따라 해수면까지 미끄러져 내려가게 된다파도가 거품이 되어 부서지기 시작하면 폭발적인 힘을 낸다. 특히 해수면에서 가장 높이 솟아올라 있는 피크는 하나의 파도에서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다.


피크 지점에서 서핑을 시작하여야만 해수면에 도달하기까지 가장 길게오래 파도를 탈 수 있다또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피크에서 더욱 용이하게 파도 위에 올라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크에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조금만 비껴나가도 그 지점에서 파도가 갖는 힘이 부족해서 서퍼가 파도 위에 올라탈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라인업 경쟁의 첫 단계는 피크를 확인하는 것이다. 보드 위에 올라앉아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파도의 모양을 잘 살피면서 이 날, 이 해변, 이 라인업에 들어오는 파도의 어느 지점이 꼭짓점에 해당해서 피크가 될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완전히 똑같은 파도는 없으니까 각 파도마다 피크의 위치도 다르다그러나 하나의 해변에 들어오는 파도들은 어느 정도는 유사한 모습을 띠기 마련이고 파도마다 피크의 위치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이전에 서핑해본 적 있는 해변이라면 입수 전부터 이렇게 피크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가늠하거나, 입수 전 해변에서 혹은 입수 후 라인업에 다다라서 파도가 거품이 되어 부서지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살피면서 오늘 이 해변에 들어오는 파도들은 어디쯤에 피크가 형성되는구나 하고 판단할 수 있다. 아니면 라인업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어느 한 지점이 있는데 그 지점이 단연코 피크에 해당한다. 


피크에서 파도타기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점은 전술하였고사람들이 피크에 몰려있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그건 전편에 말한 하나의 파도에는 한 명의 서퍼만 올라타기’ 원칙과 관련이 있다. 서퍼마다 돈을 내고 자기가 탈 파도를 사는 것도 아니고, 용왕님이 라인업에 있는 서퍼들한테 옜다 너희 고생해서 바다 한중간까지 헤엄쳐서 들어왔으니까 파도 한 개씩 가져라 하고 이름 적어 나누어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한 파도에 한 명의 사람만 올라탈 수 있을까? 


피크에서 파도를 타기 시작한 사람에게 그 파도에 대한 우선권이 있다피크가 파도를 타기 가장 좋은 위치이니 그 지점에서 서핑을 시작한 사람이 가장 올바른 서핑을 하고 있는 것이고 나머지 서퍼들은 이 사람의 그 올바른 서핑을 방해할 권리가 없다는 인식에서 나왔을 법한 서핑의 가장 강력한 룰이다. 


그래서 정신없이 내 뒤에 오는 파도만 보고 냉큼 올라타 서핑을 시작했는데 피크 쪽에서 서핑을 시작해서 나를 향해서 돌진해오는 사람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나의 서핑을 멈추어 그 사람의 갈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만약 위와 같이 돌진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 서핑을 멈추지 않고 신나게 파도를 즐겼다면 위 사람의 파도를 뺏어서 탄 것이니까 사과할 일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도, 그 사람도 서핑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충돌했다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것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예상되는 피크의 위치를 확인하였다면 그 다음 할 일은 그 위치를 최대한 벗어나지 않고 머무르며 파도를 기다리는 것이다이것이 그 날 가장 파도를 많이, 즐겁게 탈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이건 나 말고 다른 서퍼들도 다 알고 있다. 




여기에서 경쟁이 시작된다그리고 나는 경쟁이라면 아주 지긋지긋한 사람이다. 


유년 시절학창 시절에는 내가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1994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하였고 3학년이 되던 해부터 초등학교로 그 명칭이 바뀌었는데, 당시 서울 종로구 한 귀퉁이 동네의, 학생 수가 자꾸만 줄어 곧 없어질지도 모르는 3학급짜리 자그마한 학교에는 경쟁이라 할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단지 이웃집 살던 아이들보다 집중력이나 말귀를 알아듣는 능력이 조금 더 발달되어 있었던지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곧잘 이해했고 이런저런 시험에서 눈에 띄는 결과를 내었다. 글짓기나 웅변대회같이 학교 안에서 치러지는 자그마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어 집으로 상장을 많이 실어 날랐다. 중, 고등학교에 가니 전교생 인원이 많아져서 이전만큼 독보적인 결과를 내지는 못 했지만 한창 유행하던 컴퓨터 게임에 빠지면서도 시험기간의 벼락치기로 어느 정도 이상의 성적은 유지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나와 타인을 비교 대상으로 두기보다는 이전에 내가 이루었던 성취와 금번에 이루어 낸 성취를 비교하였다저번 시험보다 성적이 떨어졌으면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여 다시 성적을 복구시켜놓으면 될 일이지, 내 옆의 누군가보다 성적을 낮게 받아 아쉬워 한 일이 없었고 한 두 등수를 올려서 누구를 재껴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정도의 성적으로도 만족했다대학이 제공하는 좋은 수업과 세상이 대학생에게 부여하는 수많은 기회들을 누리고 나 자신을 가꾸어나가면 될 뿐이지 성적으로 혹은 스펙으로 누군가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 일이 없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쌓아 올린 성적과 학력스펙으로 로스쿨에 입학하였는데로스쿨 제도는 나에게 전혀 다른 방식즉 경쟁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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