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남들 보기에는 멋지게 변호사로 첫 테이크오프를 성공 했지만, 변호사가 정말 내 파도였는지 에 대해서는 수많은 의문이 들었다.
일단 변호사로서 입어야하는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출퇴근이나 법원 출장 시 이용하던 지하철 서초역 부근에서 내 기준에 가장 옷을 재미없게 입은 젊은 여성은 무조건 변호사이기 마련이었다. 다가가 변호사가 맞는지 묻거나 자격증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위아래로 훑었을 때 변호사 같다 싶어서 샅샅이 뜯어보면 법원에서 늘 보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입었을 때 어울리는 색상이나 겉으로 보이는 태를 불문하고 무조건 흰 셔츠에 검정색 하의, 자켓, 그리고 검정색 민무늬 구두를 신고 큰 서류가 들어갈 법한 멋없는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 얼굴을 보아도 영 사람이 재미나 개성이 없어 보였다.
사실 나는 어려서 옷 입기에 퍽 관심이 있었다. 초등학교 5, 6학년 무렵부터 달마다 패션지를 사 모았다. 쎄씨, 키키, 유행통신 등 지금 읊기만 해도 설렘이 다시 느껴지는 잡지 이름들이다. 나중에 나도 언니가 되면 저렇게 멋지게 입고 다녀야지 하고 들떠서 책장을 넘겼더랬다. 하지만 10대, 그리고 20대가 다 지나도록 나에게 옷차림에 투자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30대에 접어들었는데 매일 보자기 뒤집어 쓴 까마귀처럼 시커멓게 입고 다녀야 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입던 간에 상관없이 나만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적당히 예쁘고 어울리는 옷을 골라 입으면 되지 않느냐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까맣고 단조로운 정장 옷을 입는 게 최고의 선으로 평가되는 집단에서 기를 써가며 남색이나 회색의, 카라 모양이 조금씩 다른 자켓을 찾아 입는 노력을 들이는 것이, 노력 대비 별 성과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더라도 결국 나는 크게 보아 어두운 색의 정장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었고 내가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재미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 그게 참 싫었다.
그렇다고 고작 이틀 되는 주말에 내가 원하는 다채롭고 개성 있는 스타일의 옷을 구매해 갈 곳이 뭐 얼마나 많겠다고 옷장을 출근용과 주말용을 구분해 나누어 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주말용 일상복도 평일 입는 옷 스타일에 비슷해져갔다. 어둡고, 심플하게, 눈에 띄지 않게.
이렇게 매일 입는 옷이 겉으로 문제가 되는 한편, 안으로는 체력적 문제에 시달렸다. 로스쿨에 다니는 내내 위장장애에 시달렸다. 나는 체질적으로 식사 속도가 느린 사람으로 태어났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급히 먹으려고 해도 목구멍에서 음식이 넘겨지지가 않았다. 대학에 다닐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냥 나는 여자에, 키가 162cm고 발 사이즈가 240mm이듯이 밥을 천천히 먹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친구들과 함께 식판에 밥을 받아먹으면, 식사를 마친 그들은 내 식사가 끝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기다렸다가, 내가 ‘다 먹었다’하면 함께 일어나곤 했다. 옳고, 그름과 같은 가치 판단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로스쿨에 입학하자 나는 평생 느껴본 적 없던 기분을 느꼈다. 어느 날 다른 학생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다지 친하지 않던 동기라 그런지, 그가 먼저 식사를 끝내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어색함에 식탁과 식당 여기저기를 바라보고 시계도 바라보고 영 불편해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이 곳이 로스쿨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냥 혼자 식사 먼저 끝내니 할 것이 없어 뻘쭘 해 그러는구나.’ 잠깐 생각하고 내 식사를 이어나갔을 수 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다 먹었다’하고 함께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내가 ‘사배자’로 입학한 로스쿨이 아니던가. 나는 대부분의 면에서 다른 그들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돈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도록,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티가 나지 않도록, 아니 최소한 피해는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학기간이 길어지고 다른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 하고 같이 지낼수록 로스쿨에서는 시간이 부족해서 식사시간도 아껴가며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로스쿨 입학 전 사법고시 준비를 하면 식사를 빨리 하고 공부를 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를, 식사를 늦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공부에 방해 주는 사람으로 낙인찍고 말았고, 내가 그렇게 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오면 긴장해서 위가 확 굳어버리는, 식사하다가 체하는 상황들이 자주 생겨났다.
체하는 일이 반복되자 위는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점차 혼자 먹거나, 같이 먹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는 사람과 주로 식사를 하는 등 해결책을 찾아갔지만 이미 위 건강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공부, 사람관계 등 갖가지 스트레스로 인해서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계속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기본 2시간, 많게는 4시간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루 종일 공부하느라 온 머리를 쓰고 녹초가 되어 베게에 머리를 붙이면 갑자기 내가 오늘 사람들 사이에서 했을법한 실수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 때는 이렇게 말을 했어야 했는데’, ‘저 때 저런 식으로 행동해서 저 친구가 나에게 서운한 표정을 지은건가’, ‘내가 조금 더 단호하게 표현했다면 저 친구가 저렇게 나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하루 종일 어디에 숨어 있었던 생각인지, 봇물 터지듯 뿜어져 나와 나의 온 머릿속을 채웠다. 쉴 수가 없었다.
로스쿨 1학년까지만 해도 적정 수준을 유지하던 몸무게가 2학년이 되자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평소에는 산더미같이 몰려오는 스트레스와 불안에 맞서 싸우며 공부하고 있으니 몸이 축난 것이다. 살이 빠지니 기력도 함께 빠졌다. 나름 주 몇 회라도 꾸준히 운동도 하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도 받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냥 겨우 자퇴를 막고 그 상태를 버틸 수 있게만 할 뿐이었다.
물론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던 3학년을 보내면서 건강은 훨씬 더 안 좋아졌다. 모든 학교 과정, 그리고 변호사 시험이 끝나고, 모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편히 쉴 때 혼자 자취방에 누워서는 피로감과 무력감에 밥 챙겨 먹을 힘이 없었다. 하루에 한 끼 먹으면 다행이었을까.
그와 같은 상태로 로스쿨을 졸업하고 시작한 변호사 생활이었다. 열정, 패기, 그런 거 다 체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온 힘을 쥐어짜내 열정과 패기가 있는 듯 굴었다. 아니, 실제로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야근이 시작되면서 내 안에 쥐어 짤 힘이 바닥났음이 생생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녁이면 내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전날 밤 특히 집중해서 야근을 했다 치면 다음 날은 종일 기운 없는 채로 지내서 대표 변호사의 걱정인지, 눈총인지를 자주 샀다.
그렇게 되자 내 안에는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떠올랐다. 내가 체력이 좋지 않아 대표 변호사에게 피해를 주고 있구나, 이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인데, 다른 사람이라면 내가 아닌 내가 다니던 로스쿨 동기들 같은 사람일 것이고, 그들은 자기가 일하고 있는 데서 이런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피해를 주지 않고 훌륭히 일 잘 하고 있겠지. 그들이 와서 이 일을 했다면 나보다 훨씬 더 잘했을 거야. 이렇게 이어진, 보이지 않는 동기 망령들과의 경쟁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로스쿨에 입학하고 버티며 보낸 시간의 귀결이 결국 이것이라는데 대한 억울함이었다.
경쟁심과 억울함, 그 끝에 든 생각은, 나는 로스쿨을 함께 졸업한 다른 이들보다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전투적인 바람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게 공부하며 로스쿨을 졸업했으니 그들보다는 더 행복해야하지 않나. 그런데 과연 내가 이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을 수나 있을까? 이 길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나는 이렇게 억울함을 느끼고 이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동료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경쟁심을 느끼고, 이제는 행복까지 경쟁하려고 하는데?
행복 경쟁을 떠나 이 일을 통해 내가 순수하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일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누어보았다. 우선 그렇지 않은 부분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일은 감정적인 사람이 그다지 필요 없는 분야이다. 나는 어떤 면에서 아주 감정적인 사람이다. 간단히 말하면 공감능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할까.
나는 태생적으로 공감능력이 뛰어나서 의뢰인이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한다. 따라서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의뢰인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잘 듣고, 그의 처지에 이입해 필요한 위로를 진심으로 건네면서, 적절한 법률적 조언도 빼놓지 않는 아주 좋은 법률 상담을 제공할 수 있다. 나아가 그의 일을 맡게 되면, 이미 그가 겪은 일을 나의 일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법률 지식을 총동원해서 아주 꼼꼼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서류를 상세히 작성하며 재판을 준비한다. 진행 상황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의뢰인과 지속적으로 친절한 소통을 함은 물론이다. 이렇게 성의를 들인 재판의 결과는 대개 좋다.
그러나 변호사 일이 과연 이 정도의 감정적 집중이 필요한 일인가. 의뢰인의 말은 재판에 유리한 부분과 불리한 부분을 나누어 채집하듯이 가려들으면 된다. 감정적인 고통을 토로하는 부분은 계속해서 듣고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당연히 힘드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유리한 부분에 해당하는 증거를 가져오라 하고,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적당한 방어방법을 고민해서 필요한 부분만 재판 서류에 나타내면 된다. 서류는 반드시 상세할 필요도 없으며, 의뢰인과 소통은 추가 증거를 가져오라거나 하는 꼭 필요한 부분만 아니라면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사무직원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만 해도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
변호사의 업무 부담을 고려했을 때 후자가 옳다. 우리는 적절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건수임료라는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지 심리 상담까지 한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나처럼 대표 변호사가 있어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표 변호사가 내가 보통의 변호사는 들이지 않는 추가적인 노력까지 들이는 것을 고려해서 업무량을 적절히 배정해주거나 건당 인센티브를 더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전적으로 후자의 방법으로 일하는 것이 옳다.
나 역시 일을 하며 그러한 점을 깨닫고 공감을 줄이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맞나?
나는 공감능력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임이 분명하고, 성장과정에서 어떤 환경적인 요인이 있었을지언정 어쨌든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난 사람 같이 느껴지는데, 이것도 누군가는 키우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능력일 테고, 이 세상 어딘가 에서는 환영받고 잘 쓰일 자질일 텐데, 내가 이를 나의 약점으로 여겨 고치려하는 이 상황이 과연 옳은가? 아니 그 전에, 내가 이 부분을 고쳐가며 일 할만큼 이 일을 내가 좋아하나?
내가 이 일과 관련하여 즐거이 여기는 부분은 분명했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법률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추출해서, 읽는 이인 판사의 편의를 고려하여 문단을 배치하고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약화할 것은 약화하는 편집의 과정을 거치며 나의 문체로, 나의 이야기로 재탄생 시키는 일련의 글쓰기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그 외 다른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판에 나가 판사 앞에서 말하는 부분과 관련해 말 자체를 듣기 편하거나 유려하게 잘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보다 제출한 서류 내용을 얼마나 잘 요약하고 암기해서 진술하는 지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던 말하는 재미를 영 느끼게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