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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을 결정해야 할 때

반짝이는 연말의 풍경 속에서, 차분히 내려앉은 회색빛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by 말복

주문한 2025년도 달력이 도착했다. 달력을 하나둘 넘겨보며 설렘에 웃다가 다시 맨 앞 장으로 돌아왔다. 미리 1월로 넘겨둘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느끼던 것도 잠시,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2025년 1월. 이제는 먼 미래가 아닌, 바로 다음 달이다. 오늘 저녁만 해도 연말 회고를 하며 올해가 얼마나 뜻깊었는지 되새겼는데, 갑자기 닥쳐온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2024년은 분명 성장의 해였다. 주변 분들과의 교류를 통해 배운 것도 많았고, 나 자신이 단단해진 것도 느꼈다. 힘들었던 만큼 하루하루가 새로웠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년이 더 기대되기까지 했다. 이런 12월은 처음이라고 벅찬 마음에 방방 뛰며 짝꿍과 손뼉을 부딪쳤다. 그런데 왜일까. 1월에 계약 종료 건이 2건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피디 업무를 보고 있는 회사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어서일까? 웹툰 업계가 과도기를 지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그간의 자신감이 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평소라면 웹툰 포트폴리오를 정비하고 업그레이드했을 텐데, 요즘은 그럴 힘이 나지 않는다. 최근엔 인스타툰을 그리고, 행복레터를 쓰는 일이 무척 즐겁다. 아직 이렇다 할 수익은 없지만, 그저 순수하게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런데 내 본업이라고 하는 웹툰 일은…. 외주 계약은 끝나가고, 새로운 계약을 따내지도 못하고 있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회사에서는 외주 피디를 선호하지 않는다. 현실 도피 타입은 아니라 일을 먼저 처리하다 보면, 바쁜 요즘엔 삭막한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그 안에서 나는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처음 프리랜서를 꿈꿨을 때는 어땠던가. 내 것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불타올랐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오늘 연말 파티에서도 왜 프리랜서가 되었냐는 말에 내 것이 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프리랜서 기간 내 것으로 무얼 만들었는가. 가볍게, 편하게 즐겨야 한다는 명목 아래 일하는 시간 외에는 너무 편한 마음으로 대하지만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생존을 위한 선택들이 쌓이며 어느새 열정이 사라져간다.




또 한 번 내 부족함과 만난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새로운 고민을 시작한다. 무엇을 배워야 할까? 어떤 걸 더 성장시켜야 할까? 일과 관련된 능력을 더 키워야 할까, 아니면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발전시켜야 할까? 행복레터도 새로 시작했고, 새로운 일의 계약도 앞두고 있지만, 이게 내가 1월에 등록해 둔 일러스트 수업과 어떤 연관을 지을 수 있을까? 이게 맞는 걸까?


그래서일까? 프리랜서로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고 나니 궁금해진다. 나는 지금 정말로 성장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제자리걸음을 하는 걸까? 아주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단언할 수 있는가? 뒷걸음질 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그래. 어쩌면 이 모든 고민과 불안이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한 신호일 수도 있다. 답은 없고 그저 정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도 안다.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도 된다는 것도. 하지만 1인 가구이자 고양이 한 마리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는 입장으로서, 그리고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은 보통의 30대 초반으로서 마냥 느긋할 수만은 없다. 정말이지, 노산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것.


2024년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있다. 반짝이는 연말의 풍경 속에서, 차분히 내려앉은 회색빛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금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이 역시 내 삶의 한 페이지로 남기며.




그렇다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헝엉엉하는 그런 날들은 아니고요.


그냥 차분한 날들을 보내며,

멀리서 저의 버둥거림과 헤맴을 가만 바라보며,

어디로 나아가야할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제가 또 조금 단단해졌음을 느껴요.

(참나 진짜 조금만 마음이 성장해도 동네방네 소문내며 뿌듯해하는 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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