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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복 Oct 06. 2024

인생에도 비 오는 날이 필요해

세상의 모든 푸른 것들은 비가 오고 난 후 더 힘차게 고개를 들어 올린다

비 오는 날의 창가


 살다 보면 한참 달리다가 갑작스레 멈춰 서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무언가 계속해서 이뤄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달려야만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멈춰야만 하는 순간.


  늘 그렇듯 오늘도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쏟아진 장대비에 신발이 금세 젖어버렸다. 안 그래도 요즘 일이 잘되지 않아 걱정이 태산인데, 신발까지 다 젖어 버리다니. 벌써 집중이 안 될 것 같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쩐지 조바심이 든다. 심장이 쿵쿵대고 짜증이 일어난다.


'아, 신경 쓰여. 얼른 가야 하는데, 짜증나. 빨리 가서 마무리할 거 진짜 많은데. 오늘 해야 할 거 엄청 많단 말이야.'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에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 잡았다. 습관적으로 가방을 열다가 잠시 홀린 듯 창밖의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 바깥 풍경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방음창 사이로 빗소리가 작게 스며 들어왔다. ‘그래, 아예 쏟아져라. 쏟아져. 그냥 아무것도 못 하게 다 쏟아져버려!’ 그런데 포기하고 가만 들여다보니 점점 마음이 차분해진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짜증이 지나간 자리에 평온이 깃들고, 잠시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어쩌면 인생에도 비 오는 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늘은 언제나 맑을 수 없고, 비가 내려야 땅이 촉촉해지니까.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푸른 것들은 비가 오고 난 후 더 힘차게 고개를 들어 올린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생에 화창한 날만 지속되면 빠싹 메마르고 만다. 비가 오는 것처럼 고난이 찾아올 때면 잠시 멈춰 설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때로는 단단해지고, 성장하며, 다시 달려갈 힘을 비축하기도 한다.


 불안감에 조급함이 팡 터져버린 이유를 안다. 첫 번째, 불안감의 이유. 인기 작가님들은 내년 일정도 마감됐다고 하던데, 그렇지 않은 2년 차 새싹인 나는 일이 없다. 두 번째, 조급함이 팡 터져버린 이유. 일이 없어 포트폴리오를 계속 보완하고, 공모전이며 지원사업이며 불안할 틈이 없게 일정을 꽉 꽉 채워버렸다. 그런데도, 일이, 없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뜬 직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일 생각으로 머릿속이 빼곡하다. 꿈속에서도 일 생각을 할 지경이니 나를 돌아볼 여유는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없다.


 하지만 비를 가만 들여다보니 지금 필요한 게 이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내 안에 꽃 피우지 못한 새싹들이 가득했으니 비가 올 때면 행여나 새싹이 꺾일까 불안하기만 했었다. 이 불안을 빗물에 흘려보냈어야 했는데, 더욱 힘차게 달리다 넘어지기 일쑤였다. 엉엉 울기만 하는 작가에게 일을 줄 클라이언트는, 없다.


 땅이 비를 머금어야 나무에 생명이 깃든다. 그래, 나도 이 시기를 잘 이용해보자. 지난날들을 회고하고, 왜 일이 점점 줄어드는지 원인을 파악해보자. 해내지 못한 것들을 추려보고, 그중 정말 필요한 것들만 남겨보자. 불안이 빗물에 씻겨나간다. 그래, 일거리를 찾겠다고 계속 달려가기만 할 게 아니라 이렇게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었다.


  비가 그치면 하늘도 더욱 맑게 갤 것이다. 그때 다시 힘차게 나아갈 생각을 하자 이제는 설레는 마음이 든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내년엔 더 단단한 3년 차 프리랜서가 되지 않을까? 장마가 너무 길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날 썼던 글인데 다행히도 장마는 금방 그쳤고, 그 이후로 차근차근 잘 정리해나가고 있습니다.

하나씩 점검하고 해나가다 보면 못 해낼 게 역시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 시간이 필요한 걸 알면서도 가끔 잊고는 해요.

참 신기하게도 불안이나 조급함이 팡! 터질 때면 문득 깨달아요.

최근에 내 마음이나 상황을 점검했었나? 아니, 전혀.

그래서 주기적으로 나를 돌보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루의 끝, 일주일의 끝, 한 달의 끝. 아예 달력에 표기해둘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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