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스템이 문제라고요?
크몽에서 첫 대기업 외주를 받던 날 기쁨과 기대는 잠시, 곧 피로와 혼란이 찾아왔다. 이미 프리랜서 2년 차로 여러 차례의 외주 경험이 있지만, 크몽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수많은 프리랜서가 저렴한 가격에 일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 틈에 뛰어들었었다. 낮은 단가 대비 많은 작업량, 끝없이 이어지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처음엔 그저 클라이언트를 원망했다. 요구가 너무 과도하다는 생각에 울분이 터졌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아침마다 머리가 무거웠다.
그러다 얼마 전 드로잉 챌린지에서 알게 된 4년 차 프리랜서 A 님께 상담을 받게 되었다. A 님은 이미 크몽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온 베테랑이었다. 상황을 설명해드리자 가만히 들어주던 A 님은 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순간 예상치 못한 답변에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열과 성을 다해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당황을 잠시 접어두고 마음을 열고 경청했다. 그러자 조금씩 그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가 프로페셔널하지 못했구나.’ 그날의 대화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다른 일들로 하루를 보냈지만 그 대화들이 계속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밤새 생각을 곱씹었고, 다음 날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국 산책을 나섰다. 내 마음처럼 붉게 타들어가는 하늘을 보니 착잡했다. 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옳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걷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크몽에서 겪었던 일들을 단순히 힘든 경험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성장하고 싶었다. 이건 기회였다. 클라이언트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초보 프리랜서임을 인정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을 정리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내 시스템을 정돈할 것들도 하나둘 떠올랐다. 미숙함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밤에는 Zoom 모임이 있었다. 다른 프리랜서들과 함께 크몽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는데, 그 모임을 주도해주신 건 역시 A 님이었다. A 님은 자신의 경험을 낱낱이 공개하며 강의도 진행해주셨다. 자신의 시스템을 구축해 성과도 많이 냈고, 그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는 걸 보니 무척 고마웠다. 우리는 모두 그 강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프리랜서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산책하면서 느꼈던 마음의 정리가 그날 밤 다시 한번 완성되기도 했다. 나또한 이번에 얻은 깨달음을 공유하며 시스템을 어떻게 정리할지 방향이 구체화됐다. 한 번의 실수나 좌절이 우리의 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걸 배워나가야 했고, 이번 경험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며칠 후 다시 산책을 하러 나섰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니 오늘은 또 따스한 노을빛이다. 햇빛이 나무 사이로 스며들고, 건물을 밝혀 주었다. 그 길에서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겸손하게 보완해 나가며 성장하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매 순간 들여다보며 부끄럽지 않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