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Nov 27. 2020

지키고 이어가다

양양 선림원지 동종

지난 번 올린 양양 선림원지에 대한 글에서 선림원이 804년 창건되었음을 알려준 신라 시대 범종 이야길 처음에 잠깐 언급했었다. 이 범종은 1948년에 선림원지 땅속에 묻혀있던 걸 발굴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이 녹아서 현재는 선림원지가 아닌 국립춘천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2020년 6월 24일 불교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 2020년 6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지키고 이어가다’ 테마전을 개최하며, 양양 선원사지 동종과 한국전쟁 때 미군이 구한 불상 등을 전시했다. 이 행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박물관 누리집과 유튜브 등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됐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691

이 기사를 읽고, 양양에 '선원사지'란 폐사지가 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신문 기사가 오타였다. 선림원지가 맞는데 어쩌다 저런 오타를 냈나 모르겠다.

양양 선림원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다가 기억회로의 실수로 '양양 선원사지'라고 치는 바람에 뜬 기사였다. 그래서 이 동종에 관련된 내용을 쭉 쓰다가, 문득 선림원지가 아닌 선원사지여서 지웠다가, 나중에 다시 선림원지에서 찍은 사진에서 얻은 정보와 다른 자료들을 살펴보고,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 가서 전시소개를 꼼꼼히 읽어보니 불교신문에 나온 기사가 오타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양양 선림원지 동종에 대한 글을 원글에 보충할까 하다가 따로 쓴다. 동종에 얽힌 비화가 참 가슴 아프고, 선림원지에 가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긴 귀한 유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 사찰들을 다 불태우라는 미군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분들을 기리기 위한 헌사라고 할 수 있는 국중의 6월 특별전시에 소개된 양양 선림사지 동종은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듯 온전치 못한 유물이다. ( 이 기획특별전은 6.25~9.13 까지였음) https://www.museum.go.kr/site/korm/exhiSpecialTheme/view/past?exhiSpThemId=545896

804년 통일신라 순응법사가 불사했다는 명문이 새겨진 선림원지 동종은 총고 122cm, 구경 68cm의 위용을 자랑하며 1948년 양양 선림원지에서 발견됐다. 빈 절터에서 발견된지라 관리할 사람이 없어 오대산 월정사에서 보관하다가, 3년 뒤 1951년 사찰을 포함한 모든 민간 시설물을 소각하라는 한국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월정사 대부분의 건축물이 소실되면서 선림사지 동종도 녹아 일부 파편만 남게 되었다.

이 동종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에 나와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글 가운데 이 부분(전쟁의 폭격도 아닌 국군에 의해 자행된 이러한 만행은 두고두고 문화재 파손의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다소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한국전쟁 시 군작전지휘권은 미국에 있었고, 사찰의 소개명령 또한 미군이 내린 것이고 국군은 이에 따랐을 뿐이며, 그 가운데 용감한 몇몇 군인에 의해 우리의 보물이 지켜지긴 했지만 극히 일부일 뿐이란 사실. 이거 하나만 봐도 아직까지 미군에게 있는 전시작전통수권을 하루빨리 우리나라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 9세기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통일신라 범종이 바로 804년에 만들어진 선림원지(禪林院址) 종이다.

이 종을 발견한 장소가 설악산의 폐사지였기 때문에 종의 안전한 보호를 위하여 오대산의 대찰 월정사 종각에 이 종을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6.25가 발발하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이 퇴각하던 1951년 1.4 후퇴 무렵 월정사가 북한군의 은신처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절을 불태웠고 이 때 선림원지 종도 불에 녹아버리고 말았다.

전쟁의 폭격도 아닌 국군에 의해 자행된 이러한 만행은 두고두고 문화재 파손의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다. 상원사 역시 그 당시 같이 방화될 운명이었으나 목숨을 걸고 이를 막은 한암선사의 살신성인이 있었기에 상원사 국보 종은 온전히 살아남게 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다.

선림원지 종이 발견될 당시의 전언에 따르면 종은 지하 60㎝ 정도의 깊이에 옆으로 뉘인 채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목탄을 넣어 매납(묻어서 보관)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때인지 몰라도 이 종을 보호하고자 인위적으로 묻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종의 원래 총고는 122㎝, 구경은 68㎝로서 통일신라 종 가운데는 크지 않은 중형에 속하는 편이다.

현재는 그 잔편들만 국립춘천박물관에 옮겨져 보관되어 있으며 이 잔편과 원 도면을 참조하여 국립춘천박물관에 복원 전시되었다. 특히 이 범종은 다른 종과 달리 범종의 종신 안쪽에 양각의 명문을 새겨 넣었음이 독특하다. 상원사 종은 종의 천(天)판에 음각시켰고 성덕대왕 신종은 종신 몸체 가장 중심에 1000여자의 명문을 양각으로 새겼다. 그에 반하여 선림원지 종만이 외부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명문을 새긴 것은 번잡한 명문이 오히려 범종의 미감에 방해가 된다는 점을 감안한 의도적인 배려로 보인다.

* 원문은 아래에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7018


* 커버사진은 '코로나를 뛰어넘은 올해 최고의 국립공원 사진 20' 가운데  이해성 작가의 오대산 월정사


매거진의 이전글 만화 속에 풍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