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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ug 19. 2021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

파스 냄새

* 표지사진 : 하루사진방 by 라벤더향기


< 파스 냄새 >

치즈찜닭에서

파스 냄새가 난다

찜닭집 아저씨가

파스를 붙이고

음식을 만드셨을까

아니면

아빠가

식탁에서 멘소래담을 바르셨을까

장사가 참

안된다 하시며

새 옷을 보내 온

이모도 파스를 붙이셨을까

새 옷을 입고

치즈찜닭을 먹다 보니

나는 고소한 치즈 냄새 대신

그들의 파스 냄새를 맡았다

- 엄주하


좋은생각 8월호 [좋은님 시마당]에 실린

엄주하님의 시이다.

일미리 금계 치즈찜닭


치즈찜닭을 시켰는데, 먹다보니 파스 냄새가 난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음식에서 왜 파스 냄새가 나냐며 업체에 항의라도 할 법한데 이 분은 그 음식에 어려있을 찜닭집 아저씨의 고단함과 아빠의 힘겨움을 떠올린다. 그리고 역시나 장사를 하시는 이모의 푸념까지도...

이 모든 생각이 파스 냄새 하나에서 건져올린 것들이다.

매달 여러 좋은님들이 자작시를 좋은생각에 보내는 것으로 안다. 그 많은 시들 중에서 이 시를 고른 장석남 시인은 엄주하님의 '파스 냄새'를 이렇게 평한다.

누군가의 부주의에 못마땅한 것이 당연한 것인데, 거기서 그만인 것을 그 대목에서 질문을 건네는 게 바로 '시'의 기본 씨앗이라고. 그 질문에서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의 한순간이 빛을 발하며 이 시대의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 새로이 드러나게 된다고. 어떤 이는 짜증에 머물 순간을, 어떤 이는 사랑의 마음으로까지 가서 푼다고. 거기까지 도달한 것을 우리는 '시'라고 부르고 귀하다고 말한다고.

"일상에서 어떻게 시를 길어올릴 것이냐?"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늘 품고있는 화두이다.

이 화두에 좋은 답을 주신 장석남 시인의 시평을 아래에 모두 옮겨본다.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고, 나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던질 때 그때가 바로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임을 기억하자.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 1 by 모티정문선

'치즈찜닭'이라는 음식이 있나 보다 이른바 '치킨류'는 서민 음식의 대표메뉴인데 치즈가 첨가된 나름 특별식이라고 짐작된다. 물론 여기서 서민 운운이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널리 보급된 음식이라는 뜻이다. (서민 음식이 따로 있으랴. 그러나 재산이 많은 자가 값싼 음식을 먹으면 서민적이라고들 칭찬한다. 그것도 편견이다. 맛있으면 먹는 것이다)

이 시는 그 음식에서 파스 냄새가 난다는 것이 요지다. 누군가의 부주의가 원인일 테고 음식으로써 못마땅했음이 당연하고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질문을 건넨다. 그 질문이 바로 '시'의 기본 씨앗이다.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의 한순간이 빛을 발한다.

'파스 냄새'란 무엇인가? '아픔'의 등가물이다.

'아, 이 음식을 둘러싼 누군가가 지금 아프다'가

다시 이 시의 요지가 되었다.

음식점의 누군가, 때마침 새 옷을 보내 준 이모, '멘소래담'을 상용하는 아버지 등의 인물이 호출된다. 이 시대의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 새로이 드러난다.

그러나 애초에 간단한 듯한 이 질문도 아무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짜증'에 머물고 어떤 이에게는 '사랑'의 마음으로까지 가서 풀린다. 거기까지 도달한 것을 우리는 '시'라 부르고, 귀하다 고 말한다.

- 장석남 / 시인, 교수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 2 by 빛피스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 3~5 by 원래 그런 선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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