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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Sep 06. 2022

고라니의 흔적

9월 텃밭일기 1

8월에 비가 자주 와서 텃밭에 자주 안 갔더니

나보다 더 텃밭을 자주 들락거린 이가 있었다.

바로 고라니!

비가 잦아 먹을 게 귀해졌는지

산밑으로 내려와 텃밭의 고구마순을

열심히 따먹은 흔적이 텃밭 곳곳에 보였다.

터닦기부터 시작해

20년 전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이곳이

낮에도 컴컴할 정도로 울창한 숲이었고

일제시대 사냥꾼을 동원하여 해동물 소탕작전이

전국적으로 휘몰아치기 전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어슬렁대던 깊은 산이었다.

그래서 도심이 되어버린 지금도

텃밭을 빙 둘러 산이 있다 보니 

텃밭 오가는 길에 심심찮게

고라니를 발견하는 일들이 잦았다.

올해는 아무래도 밭에 덜 가서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지만

봄에는 이르게 난 상추를 뜯어먹는 일로 농부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고, 여름 이무렵엔 늘 텃밭의 고구마순을 뜯어먹고 흔적을 남긴다.

고구마순이야 한창 자랄 때는

일부러 따주기도 해야 하니까

그닥 신경쓰일 일은 아니고,

오히려 고라니가 왔다 갔구나~ 하며

빙그레 미소를 띠게 된다.

향이 강한 들깻잎은 싫어하는지

깻잎은 아무리 무성해도 따먹은 흔적을 본 적이 없다.

고라니의 식성을 짐작해보는 부분이다.

태풍 힌남노가 우려와 달리

내가 사는 지역엔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쓰윽 지나갔다.

새벽까지 장하게 내리던 비도 그치고

이제 먹장 구름 사이로 햇님이 빵긋 웃는다.

하루 이틀 땅이 마르길 기다려

텃밭에 나가보면

또 고라니가 다녀간 흔적이 보이겠지?

고라니가 먹을 게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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