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은 덤이에요
베트남어 수업시간에는 베트남의 지명이 많이 언급되곤 한다. 베트남에 살면서 어떤 관광지를 다녀봤는지, 무엇을 타고 갔으며, 얼마나 걸렸고 무엇이 인상적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줄줄이 이어서 할 수 있기 때문에 타오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베트남어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질문인 것 같다. 수업에 참석한 여러 나라 학생들의 대답을 들어보면 어느반에 가든지 모두 다른 지명을 이야기하는데, 그만큼 베트남의 관광지는 너무나 많다. 신기한 것은 학생들의 국적에 따라 조금씩 선호하는 관광지가 다른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서 한국 사람들은 조금 더 리조트 위주의 관광지를 선호하는 것 같다.
주로 대답으로 나오는 지역은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온 하롱베이를 비롯해서 하노이, 호치민(사이공)과 같은 대도시, 그리고 그 주변의 관광지들이다. 또 다낭, 푸꾸옥, 냐짱(나트랑)과 같은 휴양지도 많이 나오는 지명 중 하나이다. 그중에 냐짱(나트랑)에 대해서는 조금 남다른 기억이 있는데, 관광지로서의 기억이 아닌 그 명칭에 대한 기억이다.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이곳을 냐짱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트랑이라고 해야 하는지 망설였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수업시간에는 냐짱이라고 배웠는데, 막상 말을 할 때는 나트랑이라고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지금은 원래의 베트남 발음대로 냐짱이라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발음을 망설이고 있던 기간 중에 한국에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고 나서 베트남에 있는 우리 회사에 취직한 한 베트남 직원이 한국어로 물었다. "법인장님, 나트랑에 가보셨나요?", "엥?" 나는 다소 놀라웠다. "아니, 왜 냐짱이라고 안 하고 나트랑이라고 말해?" 나는 베트남 직원에게 되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나트랑이라고 하잖아요." 한국 사람인 나를 생각해서 일부러 틀린 발음을 한 것이었다. 외국인이 인천을 인체온이라고 발음할 수는 있어도,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인체온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는 베트남 사람이 냐짱을 나트랑이라고 발음하는 것 자체가 이상해 보였다.
과거 경영학 수업을 들을 때 회사의 비전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이 있다. 비록 당장은 도달할 수 없지만 회사가 지향하는 곳을 비전으로 정하는 것이 좋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즉, 지금 당장은 내 손끝이 닿을 수 없는 곳이지만, 계속하여 스트레칭하고 유연성을 키우다 보면 결국에는 도달할 수도 있는 지점 정도를 비전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설명한 교수님의 부연 설명을 기억한다. 그러니 좋은 비전을 세우면 회사 구성원은 도달하고자 시도할 것이고, 비록 그 지점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시도하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유연함이라는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베트남어도 마찬가지이다. 당장은 내가 유창하게 사용할 수 없겠지만 할 수도 있는 정도를 목표에 두고 계속하여 스트레칭하듯 노력하면 가능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생기는 생각의 유연함은 베트남어를 마스터하지 못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성과가 될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