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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Oct 20. 2021

할머니의 반어법

[WITH]

"할아버지도 안 계신데, 나도 이제 죽어야지."

-

할머니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병 때문에

같은 말을 수백 번 하신다.

-

누군가 그랬다.

치매는 '의미의 병'이라고.

자신이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뇌세포가 죽고,

그래서 새로운 기억이 뇌에 입력되지 못한다고.

-

할머니와 함께 사는 나로서는

부정어들로 가득 찬 말들을 계속 듣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닐 수가 없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우울해지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다 화가 나기도 한다.

-

할머니의 말에는 모순이 많다.

애초부터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삶의 의미가 아니었으니,

할아버지 안 계신다고 할머니가 죽을 이유는 없으며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죽어야지"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나는 아직 살고 싶은데.."

할머니의 반어법은 이 말을 뜻하고 있었다.

-

사랑의 진정함을 가장 잘 알게 되는 순간은

헤어짐을 앞둘 때이고,

삶의 소중함을 가장 잘 느끼는 순간은

죽음을 앞둘 때니까.

-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셨고,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고 계신 거라고,

그렇게 할머니를 이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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