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라는 이름의 바가 이곳 라오스에서는 왠지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방비엥에서 유명하다는 그곳을 가보고 싶었다. 이토록 더운 나라에서의 벚꽃이라니. 그렇지만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라오스에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고 음주검사 자체가 없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는 법이다. 나는 당당히 스쿠터를 타고 가서 - 많이는 아니어도 당연히 맥주를 마실 것을 알고 있었지만 - 이미 수십대의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는 사쿠라 바의 앞마당에 스쿠터를 들이밀었다. 앳되어 보이는 남자가 영수증을 끊어주고 주차를 도와주며 3000킵-한국돈으로 200원가량-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예상보다 크지도, 너무 화려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시골 읍내에 어느 날부터 자리 잡아서 동네 조금 논다 하는 언니 오빠들이 죄다 모여있어야만 할거 같은 실내의 모습에 나는 입장하면서부터 마음이 놓였다. 거기다가 다국적의 사람들이 아무런 질서도 없이 소복이 들어앉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라니. 아! 이것이야말로 꿈에 그리던 여행지의 모습 중 하나가 아니던가.
구석진 자리에 홀로 빈 테이블을 당당히 차지하고 비어라오와 간단한 안주를 주문했다. 맥주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혼자였다. 혼자인 것이 늘 익숙하지만 먼 이국에서 혼자라는 사실이 순간 아찔하게 느껴졌다. 세명의 서양여인들이 짧은 반바지에 나시티를 입고 줄을 서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입장했다.
혼자라는 것은 외롭지만, 그만큼 멀리 떨어져서 보고 느낄 수 있다. 나는 어쩌면 그런 면이 좋아서 혼자인 것에 익숙한지도 모른다.
어떤 음악이었을까. 등산복을 한 중년 한국인 몇몇이 메인 스테이지에 올라서 흥겹게 춤을 추었고, 술에 잔뜩 취한 벌건 얼굴의 백인 남성이 스테이지로 올라가려다 미끄러져 넘어져 그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웃었고, 나는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맥주를 홀짝이고 음악에 맞춰 살랑살랑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윗가슴에 선명한 나비 문신을 한 여자가 가벼운 미소를 띠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싸바이디!"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인사말인가. 나도 모르게 맥주잔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싸바이디!"
또렷하고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받아주며 여자는 내가 내민 맥주잔에 자신의 잔을 가볍게 부딪혔다.
"혼자 왔나요?"
자신의 폰을 보여주며 여자가 웃었다.
그래요. 나는 한국에서 왔고요. 방비엥이 처음이고요. 사쿠라 바... 아주 좋네요. 나도 번역이 된 폰을 보여주며 웃었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 나는 정말이지 늘 궁금했다. 그때의 에너지랄까, 기운이랄까, 그런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은 왜 없을까. 뭐랄까. 최신 장비들을 들이밀고, 하다못해 체온이라도 측정할 수 있지 않을는지.
하얀 피부와 큰 눈이 인상적인 그녀는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혼자 왔어요?"
"글쎼요, 그냥 혼자가 좋아요..."
혼자가 좋아서 혼자 왔다는 말에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내뱉고 나니 내 대답이 참 싱겁구나 싶었다.
"아! 근데 이름이 뭐예요?"
"난 아랑이라고 해요."
여전히 따뜻한 눈길로 그녀가 번역기를 보여주었다.
"아랑... 왠지 중국 이름 같기도 하고... 난 홍이예요. 아랑은 여기에 살아요?"
"네. 블루라군 알아요? 거기에서 가까워요. 오늘은 일 때문에 나왔다가 친구도 만나고 여기에 왔어요."
"아! 블루라군. 알아요! 오늘 낮에 거기 갔다 왔는데. 블루라군 3!"
내 대답에 그녀의 눈이 순간 빛이 나는가 싶더니 다시 살짝 어두워졌다.
"정말요? 거기가 우리 동네예요. 하하."
블루라군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낯설지만 정겨운 시골길을 달리면서 드문드문 보았던 사람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고, 우리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숨겨진 장소들이 있을까.
"스쿠터를 타고 갔는데 먼지가 너무 많아서 다 마셨어요."
손을 휘젓는 내 동작에 그녀가 귀여운 웃음을 보였다.
순간 함성이 들리고, 스테이지 위에서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위태위태하게 자리 잡고 강남 스타일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외국에서 들려오는 한국 음악은 마치 내가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온 거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순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여기에 온 이후로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강남 스타일의 위력은 언젠가는 끝이나기는 하는 것일까.
"난 이제 가야 해요. 친구들이 기다리고, 너무 늦었어요."
짧은 상념에 젖어있는 나를 깨우듯 그녀가 자신의 폰을 보여주었다.
"아! 그래요. 나도 가야 해요... 저 근데 내일 시간 되면 나랑 같이 밥 먹을까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인사에 나도 모르게 갑작스러운 제안을 하였다.
"네, 좋아요. 그런데 어떻게 연락하죠?"
아주 잠깐 놀라운 기색이 비치는가 싶더니 그녀가 내게 되물었다.
'아... 뭐... 여기, 아 위쳇! 맞죠. 그거 있죠. 위쳇."
나는 혼자서 한국말로 중얼거리다가 폰을 보여주며 위쳇이라고 외쳤다. 내 폰에 그녀는 손수 위쳇앱도 정성스레 다운로드하여 주고, 친구 맺기도 해 주고, 처음 볼 때와 같은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고 자신의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가서 이내 손을 흔들며 떠났다.
문득 새삼스럽게 혼자가 되었다는 외로움에, 나도 오래전부터 익숙했던 것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스쿠터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