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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의 휴가

by 리뷰몽땅

지인의 아빠는 작은 공장의 이사로 일하고 있었다.

사장, 이사. 그리고 그 밑으로 직원이 다섯 명.

힘든 일은 도맡아 했다. 사장은 일에 영 관심이 없었다.

이 일을 시작하자고 했던 사람도 지인의 아빠였다.

돈이 잘 벌리면 사장은 기뻐했고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사장은 지인의 아빠를 원망했다. 이런 건 왜 시작하자고 해서는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사장은 월급을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했다.

월급이 들어와야 하는 날짜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지인의 엄마는

은행 마감시간이 되어서도 입금 문작 들어오지 않으면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지인의 아빠는 점점 그 시간이 초조해졌다


월급이 밀리는 건 또 그렇다 쳐도 일감이 없으면 영업이라도 뛰어야 할텐데

아무도 일을 구하러 다니지 않았다.

이사 혼자서 공장을 돌리고 영업을 하고 밀린 대금을 독촉하러 다니는 일이 잦아졌다.


오전 7시만 되면 출근을 하던 지인의 아빠는 며칠전부터 이불 속에서 뭉개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지인의 엄마는 내심 불안했다.

오전 9시. 그녀가 알바를 하러 나갈 때까지도 남편은 이불 속이었다.

참다 참다 그녀는 한마디를 했다.


일하러 안가?


파김치가 되어 저녁 장거리를 봐서 집으로 들어온 지인의 엄마는

아이들 저녁 반찬을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학원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제각각

밥솥에서 밥을 꺼내어 오늘 반찬이 어떠니 저떠니 투정을 부리며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지인의 엄마는 소파에 누워서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갑자기 눈이 떠졌다. 핸드폰에 손을 뻗어서 시간을 보았다. 새벽 3시

지인의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싶어 안방 문을 열어보았다

아침에 몸만 빠져나간 자리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지인의 아빠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사라져 버렸다.

무슨 일이 생긴걸까.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에 일주일이 지났다.

폭풍 같은 카톡과 메시지, 그리고 전화를 퍼부어댔지만 지인의 아빠는 답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카톡을 매번 읽고 있다는 것만 확인이 가능했다


연락 안하면 실종 신고 할거야


그리고 한 시간 후에 지인의 아빠는 카톡을 보내왔다

며칠 뒤에 들어갈게


한 달만에 지인의 아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들어왔다.

지인의 엄마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저녁 밥상을 차려 주었다.


일주일 후에 지인의 아빠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전라도의 어느 공장에서 당분간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인의 엄마는 아무말 없이 반찬을 만들었다.


다시 시간은 흐르기 시작했다.

가끔 지인의 엄마는 아픈데는 없어? 라고 톡을 보냈고

한참만에 지인의 아빠는 없어. 라고 답을 보냈다


지인의 엄마는 파트 타임을 하나 더 구했다.

월급통장에 들어온 쥐똥만한 퇴직금은 금새 바닥이 나고 말 것이다.


계속 여수에 있는거야?


지인의 아빠는 답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지인의 아빠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한달 보름 만이었다. 그새 사람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지인의 엄마는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제육볶음을 서둘러 해서 상을 차렸다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 남편의 뒤통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며칠 동안 지인의 아빠는 죽은 듯이 잠을 잤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을까.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큰 트렁크를 한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어디 가?

배타러


지인의 아빠는 1년 뒤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애들 잘 키우고 있어라.

미안하다


지인의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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