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센스 1편: 전제 무너뜨리기
실무에서의 중요도에 비해
저의 표현력이 약해 전달의 아쉬움이 있었던,
설득센스(논쟁법) 1편 내용의
마침 재미있는 예시를 찾아 재구성해보았습니다.
핵심은 이전에 올려드린 글과 같으니
편하게 읽어주시고,
핵심 요지를 독자분들이 조금 더 와닿게 적어보았습니다.
설득 회의에서 수많은 전략을 써봤습니다.
그중 상대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한 방 —
바로 ‘전제 무너뜨리기’입니다.
견고하게 쌓아올린 성의 기초를 무너뜨려
성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
말 그대로 한판승.
설사 점수에서 조금 뒤지고 있더라도,
상대의 논리 구조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전제 무너뜨리기 기술은
흐름을 바꾸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전제(premise)란,
“어떤 주장이 성립하려면,
그 전에 참이어야만 하는 숨겨진 조건”입니다.
단순한 예를 보겠습니다.
누군가 스프를 다 만들고
마지막에 소금을 친 직후
간을 봤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이거 너무 짜!"
이 말은 겉보기엔 단순한 판단 같지만,
그 속에는
‘스프가 이미 고루 섞였다’는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직 섞이지 않은 상태라면,
그 스프가 짜다는 판단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어떤 말이 ‘그럴듯해 보일’ 때는
그 말 아래에 반드시 보이지 않는 믿음,
전제가 깔려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런 전제 위에서,
무의식적으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실전에서는 이 기술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연히 보게 된, 어느 (철거유예를 거절하는) 정치인과 계곡에서 불법 영업을 하는 상인의 토론 장면이었죠.
(정치색은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상인의 주장은 하기와 같습니다.
최대한 원문 그대로 받아 적어 보았습니다.
"공정성 형평성 때문에 집행하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자 방법을 찾자구요 (평상시에) 5만원 6만원에 팔다가
여름에 15일~20일이에요. 장마 끝나면.
'자릿값 10만원 받고 앉으면 20만원이다.'
그래서는 안 되죠. (벌을) 때려야죠 그런 거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런 거 하는 거지 뭐 하는 거야.
이 동네는요. 만원 올려서 7만원 받아요.
아침에 엄마들이 애기를 놀리러 와요.
그래서 저녁 때 가요. 방학하면 초등학생들.
하루 종일 엄마 아빠들이 얼마나 기분 좋아하는지 몰라요.
멀리 어딜 가요? 서민들이 해외를 갑니까?
자리값 10만원 받고. 다 그렇게 폭리 취하고 하는 데는 단속해야겠죠."
어떻게 반박해야할까요?
그리고 실제로 반대편은 어떻게 반박했을까요?
"불법입니다."
"지금까지 유예해준 게 관대한 거였습니다."
"정당한 다른 운영자들과 형평에 어긋납니다."
모두 논리적으로 맞는 반박이지만,
결정적인 감정의 파고를 넘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상인의 말은 이렇습니다:
"나는 하루 7만원 받으며,
돈 없는 서민들에게 멀리 못 가는
여름날 휴식을 제공해왔다.
서민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는가?
이걸 부순다는 건 서민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이 성립하려면 다음 전제가 필요합니다:
7만원은 정당하며, (폭리를 취하는 상인을 막으니) 사회적으로 이로운 가격이다.
멀리 못 가는 서민을 위한 대체 불가능한 장소다.
서민들이 좋아하니, 공공성이 있고 공익적이다.
불법/합법여부보다 서민감정이 우선이다
따라서, 단순한 '불법이다'등의 반박은
정 없는 행정, 서민 탄압 프레임에
걸려들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전제를 인정한 뒤,
더 큰 전제로 대체하는 전략입니다.
"맞습니다.
하루 7만원으로 멀리 못 가는 서민들이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며 행복했던 거,
정말 소중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공원을 조성해서
더 넓고 안전하고 깨끗한 공간을,
이제는 5천 원만 내고
서민 가족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 상대의 전제를 부정하지 않고 흡수한 뒤, 더 큰 가치로 재설계.
Q1. “이번에 마케팅 예산을 줄여야 해요. 매출 증가가 없잖아요.”
전제: 매출은 마케팅이 유일한 원인이다.
Q2. “지금 가격을 올려야해요. 고객 수요가 이렇게 많을때가 기회니까요..”
전제: 지금의 높은 수요는 가격과 상관없는 다른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
Q3. “이번 계약은 빨리 진행해야 합니다. 회사가 성장하려면 기회를 놓치면 안 돼요.”
전제: 지금 이 계약은 성장에 필수적인 기회다.
논쟁은, 말을 더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닙니다.
말의 뿌리를 먼저 보는 사람,
즉 전제를 먼저 읽은 사람이 이깁니다.
오늘 당신의 회의에서,
짜릿한 한판승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