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성공이 남긴 그림자, 젠트리피케이션
2025년 10월 토요일 오후 3시, 서울 성수동.
같은 동네, 불과 200미터 거리. 그런데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성수동 카페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기 대기 2시간이래요!"
"아니 주차할 데가 없네"
"인스타 찍고 가자!"
뒷골목은? 텅 비어있었다.
'임대문의' 스티커가 붙은 가게가 열 곳 중 넷.
한때 수제화 장인들이 망치질하던 거리. 이제는 유령도시다.
"저희도 곧 나가요."
10년째 가죽공방을 운영하던 김 사장(48세)의 한숨.
"임대료가 3배 올랐어요. 처음엔 월 200만원,
지금은 600만원. 카페거리 덕분에 동네가 유명해졌는데, 정작 우리는 쫓겨나네요."
100미터 떨어진 프랜차이즈 카페. 점장 이 씨(35세)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저희도 힘들어요. 본사에서 요구하는 매출이 있고,
임대료도 월 1,500만원이에요. 안 팔면 저희도 망해요."
같은 동네에서 벌어지는 다른 전쟁.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교과서적 정의: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
하지만 현실은 더 복잡하다.
서울에서 관찰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실제 모습:
1단계 - 발견: 임대료가 싼 낙후 지역 → 예술가, 청년 창업자 유입
2단계 - 활성화: 독특한 가게들 → SNS 확산 → 방문객 증가
3단계 - 자본 유입: 프랜차이즈, 대형 브랜드 진출 → 임대료 급등
4단계 - 전환: 원래 상인 퇴출 → 획일화된 상권
5단계 - 쇠퇴: 개성 상실 → 방문객 감소 → 공실 증가
2010년대 이후 서울의 패턴은 특히 독특하다.
강내희(2017)는 이를 "금융화된 도시공간의 문화정치경제적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쉽게 말하면? 돈이 돈을 낳는 구조(M-M')에서, 도시 공간 자체가 금융 상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 검색 빈도:
2014년: 33건
2017년: 1,736건
2024년: 측정 불가(일상 용어화)
AURI(2018) 진단 지표로 본 위험 신호:
임대료 상승률 >매출 상승률 = 위험
외지인 소유 비율 5%p 이상 증가/분기 = 경고
프랜차이즈 3개 이상 연속 입점 = 적신호
실제 사례 - 대전 원도심(2012-2018):
'꼬씨꼬씨': 월세 30만원 → 50만원 (1.7배)
'북카페 이데': 보증금 500만원 → 3,000만원 (6배)
'앙뜨르뽀': 임대 증액 내용증명 → 폐점 → 재개발
여기서 질문. 누가 악인인가?
임대인의 논리:
"내 건물인데 왜 임대료를 올리면 안 되나?
주변 시세가 올랐는데 나만 손해 봐야 하나?
은행 대출 이자도 내야 하고, 재산세도 올랐다."
건물주 박 씨(65세)의 추가 증언:
"30년 전 이 건물 살 때 빚내서 샀어요.
노후 자금이 이거 하나예요. 자식들한테 물려줄 것도 이거뿐이고.
그런데 임대료 동결하라고?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프랜차이즈의 논리: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한다.
본사 로열티, 직원 월급, 재료비...
임대료 1,500만원 내려면 하루에 500잔은 팔아야 한다."
프랜차이즈 점주 김 씨(45세)의 속사정:
"퇴직금 다 털어서 창업했어요. 개인 카페 하고 싶었지만...
실패가 무서웠어요. 애들 대학 보내야 하는데.
프랜차이즈라도 하면 본사가 도와주니까.
그런데 본사 로열티에, 인테리어 규정에, 원재료 강제 구매에...
남는 게 없어요. 최저임금 오르니까 알바생 한 명 줄였어요.
제가 새벽부터 밤까지 서 있어요."
원주민 상인의 논리:
"10년을 버텼다. 이 동네가 뜨기 전부터 있었다.
우리가 만든 분위기 덕분에 땅값이 올랐는데, 왜 우리가 나가야 하나?"
청년 창업자의 논리:
"꿈을 갖고 시작했다.
그런데 임대료가 매출의 50%를 넘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일하는 건지..."
그런데 여기 더 많은 목소리가 있다.
프랜차이즈 알바생 최 씨(23세):
"개인 카페는 최저시급도 안 주는 곳이 많아요.
4대 보험? 꿈도 못 꿔요.
프랜차이즈는 그래도 규정이 있으니까...
여기 문 닫으면 저는 어디서 일해요?"
구청 공무원 정 씨(38세):
"상생협약 만들라고 하는데,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없어요.
건물주 만나면 '재산권 침해'라고 하고,
상인들 만나면 '왜 가만있냐'고 하고.
위에서는 실적 내라고 하고. 미치겠어요."
동네 주민 이 씨(67세):
"솔직히 편의점이 편해요.
새벽에도 열고, 가격도 똑같고.
동네 슈퍼는 비싸기만 하고 불친절해요. 그
래도 정이 있어서 가긴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안 그러잖아요."
관광객 서 씨(28세):
"성수동 핫플이라고 해서 왔는데,
다 똑같은 카페더라고요.
그래도 인스타에 올릴 사진은 찍어야 하니까...
사실 스타벅스가 제일 편해요. 와이파이도 빵빵하고."
모두가 자기 나름의 합리성을 갖고 있다.
진짜 문제는 뭘까? 시스템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퇴치'해야 할 '악'으로 봤다.
틀렸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죽은 도시에는 젠트리피케이션도 없다.
문제는 그 과정을 어떻게 '운영'하느냐다.
퇴치 프레임의 한계:
임대료 동결 → 임대인 반발 → 우회 수단 동원
프랜차이즈 규제 → 자영업자도 피해 → 상권 전체 위축
보조금 지원 → 일시적 효과 → 근본 해결 안 됨
운영 프레임의 가능성:
변화는 인정하되 속도를 조절
이익은 인정하되 분배를 설계
성장은 추구하되 다양성을 보호
핵심은 '누가 무엇을 얻고, 누가 무엇을 부담하는가'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 스크린쿼터 논쟁과 똑같다. - 같은 구조, 다른 무대
영화계는 "한국영화 보호"를 외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관 입장은?
"관객이 안 오는 영화를 틀어서 적자 나면 누가 책임지나?"
영화관 알바생은?
"관객 없으면 우리부터 잘려요."
젠트리피케이션도 마찬가지다.
"개인가게 지키자" 맞는 말이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점주는?
"우리도 자영업자예요. 우리가 망하면 누가 책임지나요?"
프랜차이즈 직원은?
"여기라도 없으면 백수예요."
정답은 없다. 하지만 더 나은 답은 있다.
2019년, 성수동 소셜벤처들이 모였다.
"각자도생하면 다 죽는다. 뭉쳐보자."
'성수동 소셜벤처 클러스터'의 시작이었다.
참여 기업 대표 A씨:
"처음엔 임대료 때문에 모였어요.
그런데 모이다 보니 더 큰 게 보였죠. 우리가 만드는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들이 만든 것:
공동 임대 협상 (규모의 경제)
상호 고객 공유 (네트워크 효과)
지역 고용 우선 (커뮤니티 강화)
건물주와 수익 공유 모델 실험
특히 주목할 건 '수익 공유 모델'이다.
기본 임대료는 낮추되, 매출의 일정 비율을 추가로 공유.
건물주는 안정적 수익 + 성장 가능성. 임차인은 초기 부담 경감 + 성장 유인.
건물주 한 씨(58세)의 반응:
"처음엔 거부감이 있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합리적이더라고요.
장사 안 되면 어차피 나가잖아요. 차라리 같이 키우는 게 낫죠."
결과는? 아직 진행 중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함께' 대응하니 '혼자'일 때보다 강하다는 것.
만약 젠트리피케이션을 '운영'한다면?
1단계 - 조기 경보 시스템
임대료 상승률 모니터링
상권 구성 변화 추적
공실률 변동 감지
2단계 - 이해관계자 협의체
임대인 + 임차인 + 지자체 + 시민
정기적 대화와 정보 공유
갈등 조정 메커니즘
3단계 - 속도 조절 장치
급격한 변화 방지
단계적 전환 유도
완충 기간 보장
4단계 - 이익 공유 구조
지역 재투자 의무
원주민 우선권 보장
공동체 기금 조성
5단계 - 다양성 보호 장치
업종 다양성 쿼터제
독립 상점 인센티브
프랜차이즈 연접 제한
그런데 이게 가능할까?
회의론자들은 말한다. "시장경제에서 규제는 부작용만 낳는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장도 룰 위에서 작동한다.
축구에 규칙이 있듯이, 시장에도 규칙이 필요하다.
문제는 규칙을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다.
첫째, 프랜차이즈도 피해자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는 다르다. 하지만 점주 대부분은 영세 자영업자다.
평균 부채: 2억 원
평균 순수익: 월 200-300만원
폐업률: 3년 내 50%
둘째, 임대인도 다 다르다.
건물 하나로 노후 생활하는 노인
대출로 건물 산 중산층
투기 목적의 법인 이들을 같은 잣대로 볼 수 없다.
셋째, 시민의 이중성을 인정해야 한다.
"독립서점 지키자" 포스팅하고 교보문고 간다.
"동네가게 살리자" 말하고 쿠팡에서 산다.
이게 현실이다.
도덕적 비난보다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
젠트리피케이션 자가 진단:
□ 최근 3년간 임대료가 2배 이상 올랐다
□ 프랜차이즈가 3개 이상 연속으로 들어왔다
□ 오래된 가게가 6개월에 하나씩 사라진다
□ 주말 유동인구가 평일의 5배 이상이다
□ 원주민과 새 상인 사이 대화가 없다
3개 이상 체크? 당신의 동네는 젠트리피케이션 진행 중이다.
"너무 거대한 문제 아닌가?"
아니다. 작은 실천이 큰 변화를 만든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
단골가게 지키기 - 일주일에 한 번은 동네 가게 이용
관계 맺기 - 사장님 이름 외우고 안부 묻기
알리기 - SNS에 프랜차이즈만이 아닌 동네 가게도 소개
이해하기 - 프랜차이즈 점주도, 건물주도 사람이다
상인이 할 수 있는 일:
연대하기 - 혼자가 아닌 함께 대응
차별화하기 - 프랜차이즈가 못하는 것 찾기
기록하기 - 임대료 변동, 매출 추이 데이터화
소통하기 - 건물주와도, 고객과도, 이웃 상인과도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일:
감시하기 - 상권 변화 모니터링
연결하기 - 이해관계자 대화 테이블
실험하기 - 새로운 모델 시도
기록하기 - 성공과 실패 모두 자산
정책 입안자가 할 수 있는 일:
경청하기 - 모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
실험하기 - 작은 구역부터 시범 사업
측정하기 - 정성적, 정량적 효과 모두
수정하기 - 실패를 인정하고 개선
진실 1: 젠트리피케이션은 막을 수 없다. 도시가 살아있는 한, 변화는 계속된다.
진실 2: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중요한 건 그 손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진실 3: 정답은 없다. 서울의 답과 대전의 답이 다르다. 성수동의 답과 망원동의 답이 다르다.
진실 4: 시간이 걸린다. 빠른 해결책은 없다. 지속적인 노력만이 답이다.
결론: 괴물과 함께 살기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투명성. 누가 얼마를 벌고, 누가 얼마를 잃는지 명확히 하라.
둘째, 속도 조절. 변화는 필요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파괴다.
셋째, 공정한 분배. 도시의 성공은 모두가 만든다. 과실도 나눠야 한다.
성수동 뒷골목 김 사장의 마지막 말: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억울해요. 우리가 10년간 만든 이 동네 분위기, 그 가치는 누가 가져가는 건가요?"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모두 젠트리피케이션의 공범이다.
핫플을 찾아다니는 당신도
임대료를 올리는 건물주도
프랜차이즈를 여는 점주도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도
비난할 시간에 이해하자.
배제할 시간에 포용하자.
싸울 시간에 대화하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괴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길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길들이기는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모두가 참여할 때 가능하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괴물이 다가오는 것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는지,
'세 가지 경고 신호'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도시는 영원한 베타버전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개발자다. 실패해도 괜찮다. 다시 코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