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끌림은 우연이라지만, 나에게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어떤 감정은 마음속에만 오래 머문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간절했던 마음. 그 마음이 금기처럼 느껴지곤 했다.


사랑이 죄라서가 아니라, 차마 말할 수 없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나는 처음으로 사랑이 '하지 말아야 할 감정'이라고 느껴질 수 있구나 싶었다. 베르테르는 이미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했다. 그 사랑은 너무나 선명해서 오히려 불행했다.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 하는 마음. 그 사랑은 끝까지 허락되지 않았다.


어떤 마음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더욱 진심이 된다. 너무 사랑해서 도달하지 못한다는 세계선이 아리고 아쉽기만 하다.


사랑이 금기처럼 느껴졌던 순간들이 내게도 분명히 존재한다. 감히 다가갈 수 없어서,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걸 알아서. 아니, 때로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더라도 내 상황이, 감정이, 불안이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 순간에 시작한 사랑은, 기쁨이 아닌 늪이 되곤 했다. 빠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나는 끝까지 그 사람을 탓할 수 없었다.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내 안의 허기에서 시작됐다는 걸.


스피노자는 끌림과 사랑을 나눴다. 어떤 기쁨이 우연으로부터 왔다면 그것은 끌림이고, 기쁨이 필연이라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우연한 기쁨은 바뀔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필연적인 기쁨은 오직 그 사람이어야만 가능하다. 그 기쁨이 타인으로 대체되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사랑을 했을까, 아니면 끌렸을까.


정말 이상한 건, 내 마음은 분명 필연처럼 강하게 움직였지만, 현실은 이를 결코 받아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 했고,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만이 나의 환희였다. 하지만 이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렇게 본다면 스피노자의 구분은 때론 지나치게 논리적이다. 세상에는 필연적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분명히 존재한다. 오히려 그런 사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끌림은 스쳐지나가지만,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이 꼭 이뤄져야만 사랑인 걸까?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저 누군가를 향해 마음이 움직인 그 순간, 그게 정말 진심이었다면, 그건 사랑일지도 모른다.

황혼빛처럼 잠깐 스치고 지나가더라도 가슴 한켠에 남아 오래도록 빛을 내는 그런 사랑 말이다.


사랑은 때때로 기록되지 못한다. 이름조차 붙이지 못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추억 속에서만 아프게 남아있는 그 감정. 어쩌면 사랑은 '완성'보다 '남음'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마음, 그리움, 포말처럼 부서지며 남겨진 흔적.


그 사람은 나의 기쁨이자 환희였고, 나의 늪이었다. 사랑은 늘 그렇게 아름답고 위험한 모순 속에서 꽃피운다. 그 사람이어야만 했던 이유를, 그렇게 나는 가슴 속에 묻는다.


(사진출처: pinterest)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