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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Jan 12. 2023

상실의 시작

심용희 《펫로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5%(약 300만 가구)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고 한다. 조사 기관에 따라 30%에 육박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리고 이 숫자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구 수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어떤 존재도 영생할 수 없기에 이별의 순간은 예정돼있으며 그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데도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들 중 상당수가 ‘펫로스 증후군(Petloss Syndrome, 이하 펫로스)’을 겪는다고 한다. 펫로스란 단순히 반려동물 사별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강성일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는 《안녕, 우리들의 반려동물 펫로스 이야기》(시대인, 2020)을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말 그대로, ‘펫로스’는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음으로써 얻는 마음의 병이다.”(18쪽)

      

혹자는 ‘고작 동물이 죽었는데 왜?’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감수성이 필요한 모든 것들이 그렇듯, 반려동물 사별에 관한 인식(과 제도) 역시, 현실의 속도보다 더디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펫로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이담북스, 2020)의 저자, 심용희 수의사도 이 상실을 아는 사람이다. 저자는 반려동물 사별자에게 말한다. “이 정도의 슬픔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당신의 슬픔은 당연한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과 교감을 나누었던 존재를 떠나보낸 후, 온전하게 집중하여야 하는 감정이자 과정입니다. 슬퍼하세요. 그리워하세요. 안타까워하세요. 이것은 이별 후에 따르는 정상적인 감정이며 당신의 정당한 권리입니다.”(81~82쪽)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별의 과정을 겪는 것이 괴롭고 슬프다고 해서 이를 혼자 마음에 담아두거나 애써 담담한 척하는 것은, 이별을 온전히 겪어내야 하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32쪽) 그러면서 펫로스를 겪는 이들의 주변 사람에게도 당부한다. “펫로스를 겪는 사람을 돕는 방법은 ‘조언’이나 ‘제안’을 통한 ‘상담’이 아니라, ‘경청’과 ‘교감’을 통한 ‘동반’입니다. (중략)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닌, ‘같이 있어 줄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주세요.”(167~168쪽)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들어주는 역할’이자 ‘힘든 시간을 함께해 주는 역할’이면 충분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166쪽) 스스로 치유하도록 곁에서 보조하는 것. 이것이 타인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이리라.

     

고백하자면 이 책을 만난 것도,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전부 나의 사정 때문이다. 며칠 전, 우리 가족은 갑작스레 반려견을 떠나보냈고, 우리 중 누구도 이 상실의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은 없다. 나 역시 그렇다. 예고 없던 상실 앞에서 먹거나 자는 일은 뒤로 미뤘다. 일도 잠시 쉬기로 했다. 어떤 참담함에 빠진 게 아니라 눈앞의 모든 현실이 참담해져서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펫로스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상실을 치유하기 위한 독서는 아니었다. 이 상실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을 뿐이다. 책을 통해 상실의 고통을 덜어냈는지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죽음의 상실을 덜어낼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을 뼈아프게 되새기며 가만한 시절을 보낼 따름이다.

     

한 존재를 떠나보낸 인간의 시계는 거기서 멈춰진다. 멈춰진 시계가 다시 동작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영원의 시간이 필요한 이들도 있겠다. 무엇으로도 견딜 수 없는, 그래서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간신히, 하던 것을 하고 만다. 나는 겨우 책을 읽고 이 글을 썼다.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시간을 단 1분, 1초라도 더 빨리 흘리려고 그랬다. 상실의 시작 앞에서 나와 같은 우리에게는 이것만이 최선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시계추를 움직이기 위해 무용한 짓을 반복하는 것. 이 허망한 안간힘을 아는 분들에게 감히 한 가지 부탁드린다.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좋은 곳에서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빌어주시기를.



(2023. 01. 10.)


(@dltoqur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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